[남기고 꿈의여정 50년 칸타빌레] 120. 빅3 콘서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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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국 대중가수로는 최초로 2000년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콘서트를 열었을 때의 필자.

2000년대 들어 한 공연 중 가장 기억에 남고 의미도 컸던 것을 꼽으라면 호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콘서트를 들겠다. 시드니 해변에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이 들어선 오페라하우스. 그 아름답고 세계적인 콘서트홀에 한국 대중가수 최초로 섰다는 것은 무척 즐겁고도 뿌듯한 일이었다.

2004년 말 무렵부터 나는 데뷔 50주년 기념 대공연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88서울올림픽 개최로 데뷔 30주년 공연을 한 해 미룬 탓에 40주년 공연도 1999년에 했지만, 이를 바로잡아 50주년 공연만큼은 2008년에 하기로 했다.

데뷔 50주년 공연은 나 자신, 그리고 팬들과 한 약속이었다. 이를 잘해낼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그 뒤 활동은 함부로 약속할 수 없었다. 때문에 50주년 공연은 내게 최후의, 그리고 최고의 무대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008년까지 남은 3년여의 시간이 결코 길지 않게 느껴졌다. 더 다양한 모습으로 더 많은 팬을 만나고, 팬들에게 더욱 친숙한 가수라는 느낌을 주기 위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형태의 콘서트를 기획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 즈음 ‘빅3 콘서트’ 제의를 받았다. 이 콘서트는 각자 다른 장르의 대중가요를 30~40년 불러온 가수 패티김·이미자·조영남이 한데 뭉쳐 한국 가요사를 망라한다는 취지로 기획됐다. 2004년 3월 방송 77주년을 기념해 KBS가 기획한 ‘빅3쇼’ 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나 성악을 전공한 조영남이나 모두 각자 장르에서 최고로 불릴 만한 훌륭한 가수들이었기에 관객 입장에서는 전대 미문의 흥미진진한 콘서트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콘서트를 여는 가수들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솔직히 말해 부담감은 다른 공연의 배 이상이었고, 얻는 것 보다 잃는 것이 많을지도 모르는 콘서트였다. 그것은 각자가 침범할 수 없는 정상의 위치에 있었으므로 더 했다.

공연 기획자들은 우리 세 가수를 끈질기게 설득했다. “당신만 OK 하면 모두 OK”라는 악의 없는 거짓말까지 해가며 결국 콘서트를 성사시켰다. ‘빅3 콘서트’는 결국 전국 투어까지 무사히 마쳤고, 세 가수 모두 잃은 것 없는 성공적인 결과를 얻었다.

덕분에 관객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내친김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로 했다. 뭔가 특별한 무대가 또 없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낸 것이 바로 2005년 ‘객석으로’라는 공연이었다.

47년 가수 인생에서 공연 도중 무대 아래로 내려가본 적이 거의 없었다. 저 하늘 높이 홀로 뜬 별처럼 그 누구의 손에도 절대로 닿지 않는 것이 진정한 스타의 자세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 규칙을 깨도 좋을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패티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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