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 2004] 1인2표 곳곳서 "헷갈리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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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대 총선 투표일이자 법정 공휴일인 15일 오전 서울 청량리역. 휴일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이 기차에 오르고 있다. [연합]

15일 실시된 17대 국회의원 총 선거가 별탈없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이날 오전 6시부터 전국 1만3167개 투표소에는 소중한 한표의 권리를 행사하려는 국민의 발길이 이어졌다.

지난 2일부터 13일간 선거운동을 벌여온 후보자들은 지구당 사무실 등에서 초조하게 유권자들의 심판을 기다렸다. 이번 선거에서는 노인층의 투표 참여가 눈에 띄게 많아지는 등 전체적인 투표 참여율이 높아진 것도 특징이다.

하지만 투표소 곳곳에선 이번 선거부터 처음 실시된 '1인2표제' 등 투표 방법을 놓고 크고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 이날 오전 11시30분쯤 서울 송파구 삼전동 삼전동사무소 투표소에서 삼전동 제1 투표구 정모(58) 선관위원장이 90대 유권자의 투표를 대신 해주다 잘못 기표해 선관위가 진상 파악에 나섰다.

정위원장은 李모(94.여)씨가 "눈이 어두워 잘 안보이니 기표를 도와달라"고 요청해 선거관리위원과 정당 참관인의 동의를 얻어 대신 기표했다. 그러나 李씨의 요구와 달리 정씨가 정당 투표용지에 기표를 잘못해 정당 관계자들이 항의하기도 했다.

또 동작구의 한 투표소에서는 유권자들이 하얀색 지역구 후보 투표용지와 연두색 정당 투표용지를 같은 투표함에 넣으려 하자 선관위 직원들이 급히 제지했다.

서울 서대문갑의 한 투표구에 투표하러 왔던 안계준(78) 할머니는 "일단 하나는 기표소에서 기표하고, 나머지 하나는 다른 데서 기표하는 줄 알고 그냥 나왔다"면서 "선관위 직원들의 설명을 듣고 제대로 투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을구의 선거관리위원은 "1인2표제와 관련해 큰 혼란은 없었지만, 나이 드신 분 중 일부가 투표 방법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투표하기 위해 급히 귀국한 해외동포들도 많았다.

투표일에 맞춰 지난 13일 귀국했다는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李모(48.여)씨는 "그동안 한번도 투표를 못했는데 이번에는 친지 10명과 투표하러 왔다"면서 "국가 경제가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투표에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서 투표를 마친 일본 도쿄(東京)에 거주하는 강성현(76.목사)씨는 "정치적 소신을 실천하기 위해 만사를 제쳐놓고 이틀 전 귀국했다"며 "이번 총선에서 국회의원들이 양심적으로 변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948년 5월 제헌국회 총선부터 이번 총선까지 한번도 빠지지 않고 개근한 노부부가 나란히 투표장에 나타났다.

서울 성동구 행당동에 사는 김왈술(78)씨와 부인 윤납생(75)씨 부부는 이날 오전 11시쯤 정장에 중절모 차림으로 투표소가 마련된 성동구 의회 건물에서 한표를 행사했다.

45년 결혼한 金씨 부부는 48년 제헌국회 총선 때 부인 윤씨가 어린 나이 때문에 투표권이 없어 金씨 혼자 투표한 것을 제외하고는 한번도 빠지지 않고 투표장을 부부가 함께 찾았다.

金씨는 "그동안 수없이 투표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대선 때가 아슬아슬했고, 개인적으로 기적이 일어난 것 같아 기억에 남는다"며 "한국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경력이 있는 후보에게 투표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金씨는 또 "여야가 균형을 이뤄 견제하고 발전하는 17대 국회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이번 선거는 과거 어느 선거보다 안정적이고 돈도 뿌리지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날 제주도 투표소에선 기표용구 대신 아이스크림 막대기로 기표한 한 유권자가 재투표를 요구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 11시쯤 제주시 이도2동 제8 투표구에서는 양모(40)씨가 "투표 용지를 받고 기표소에 들어가니 기표용구로 보이는 막대기가 있어 무심코 투표했는데, 기표용구가 아닌 아이스크림 막대기였다"며 재투표를 요구했다.

이에 선관위 측은 양씨의 기표지와 기표소에 있던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별도 봉투에 밀봉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기표소에 부모와 함께 들어갔던 어린이가 아이스크림 막대기를 기표대에 놓고 가는 바람에 유권자가 착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리짜이팡(李在方) 주한 타이베이(臺北) 대표부 대표가 15일 오전 11시쯤 종로구 서울시 교원단체 총연합회 건물 1층에 마련된 사직동 제2 투표소를 방문했다.

리짜이팡 대표는 앞서 투표하고 있던 유권자들 사이에 줄을 서서 신분증 확인부터 기표에 이르는 투표과정을 눈으로 직접 확인했고, 17대 총선에서 첫 실시되는 1인 2표제에 대해서도 각별한 관심을 나타냈다.

리짜이팡 대표는 "한국 민주주의는 상당히 발전해 있고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은 많은 교류와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몽골 중앙선관위의 에르렌촐론(42) 위원장과 바얀듀렌(39) 사무차장도 서울 서초동 원명초등학교에 마련된 투표소를 방문, 투표 진행과정을 지켜봤다.

지난 14일 저녁 입국한 이들 일행은 투표가 끝난 뒤 오후 6시30분 서초구 서초동 양재고등학교 서초구 개표소에서 개표상황을 참관했다.

에르렌촐론 위원장은 "오는 6월 17일 몽골에서 실시될 총선을 앞두고 개표과정을 중심으로 참관할 계획"이라며 "몽골에서는 수작업으로 개표하는데 한국은 자동개표기로 개표한다고 해 살펴보려고 왔다"고 말했다.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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