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악마가 바쁠때 술을 보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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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대학생들,특히 신입생들을 맞이하는 과정에서 횡행하고 있는 음주관행은 적자생존을 시험하는 범죄집단이나 깡패집단의 신고식에서나 있음직한 파괴적이고 자해적(自害的)인 모습을 갖고 있다.제국주의를 꿈꾸던 일본군이 제2차세계대전 당시 저질렀던 인간 대상의 생체실험을 연상시키는 이런 음주관행은 한마디로 많은사람들을 분노케 한다.
범죄집단들이 새로운 가담자의 지구력과 배짱의 수준을 검증하기위해 저지르는 공개적인 린치를 그대로 본뜨고 있다.언뜻보면 패기가 있는 듯한 이런 모습의 집단 린치는 집단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의식을 심어주고 배반의 출구를 일찌감치 봉쇄 시켜주는 효과를 노리는 방법으로선 최선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유와 행동의 다양성을 폭력적 방법으로 일원화시켜 집단의 일사불란한 진로를 가다듬는데 이런 혹독한 린치는 필요하다고 그들은 믿는 것 같다.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가해자는 도덕적 책임에서도 해방되고 피해자 역시 개인적인 원 한을 전혀 가질 수 없다.
그런데 이른바 지식인계층이라는 사회적 평판을 듣고 있는 어엿한 대학생들이 범죄집단이나 깡패집단이 가진 반사회적이고 살인적인 관행을 본뜨고 있다는데 아연할 따름이다.
작지 않은 그릇에 가득 부어진 술을 마시고 견딜 수 없을 때는 대학생자격이 없다는 논리가 깔려 있는 이런 괴기스런 작태는설사 궤변으로도 설명이 불가능하다.감당하기 어려운 양의 술을 마시고 났을 때,일상적인 인식의 소멸과 외부조건 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그리고 그것에서 비롯되는 혼돈과 방종은 필연이다.그래서 바보의 혀가 되고 건달의 마음이 되어 사리분별의 무덤 속에서 해석이 불가능한 갖가지 해괴망측한 행동을 연출할 때,그 흥미로운 모습을 바라보며 즐기자는 야 비한 심술은 지성인의 가슴을 가졌다는 사람으로선 설명되기 쉽지 않다.
악마가 사람을 찾아다니기에 바쁠 때는 그의 대리로 술을 보낸다.술의 해독을 극대화시킨 표현이긴 하지만 요즈음 일부 대학생들 사이에 역병처럼 창궐한다는 막된 음주관행을 곧이곧대로 표현하는 말로선 매우 적절하다.소위 우리 사회에 만연 된 저질 군사문화를 혐오하면서 군사문화가 낳은 이런 못된 관행을 답습하고있는 대학생이 있다면 그는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에서도 바보임이 틀림없다.
일찍이 술은 미혹(迷惑)과 혼돈(混沌)으로 회자(膾炙)됐다.
하늘의 아들 해모수(解慕漱)는 주몽의 외조(外祖)인 하백(河伯)의 딸 유화(柳花)를 술로 유혹해 사통했다.그래서 술은 일찍이 이성적 측면보다 본능이나 감성적 영역만을 강화 시켜주는 미약(媚藥)으로 알아왔다.술은 사람을 미분화(未分化)상태에서 극도로 단순화시킨다.해모수가 술로 유화를 유혹할 수 있었던 것은유화의 미혹과 혼돈,그리고 미분화상태를 일찌감치 예견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술에 대한 우리의 전통적인 인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바로 예(禮)였다.우리는 중국.일본과 달리 반가운 손님을 맞이하게 되면 술로써 인정을 표시했다.특히 막걸리는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막아주었고 한끼 식사를 대신하는 역할을 톡톡히 감당했다.그러므로 우리에게서 술은 공손한 마음과 자세로 어른께 예를 갖춰야 하는 도(道)다.나이에 따라 순배할 차례를 정하고 연장자에게 먼저 술을 권하고,아랫사람은 술잔을 두손으로 공손하게 받아 몸을 뒤로 돌려 손윗사람에게 술잔이 보이지 않도록 해서 마신다.
식사대접에는 반주를 곁들이고 제사때도 술을 먼저 올린 다음에 메밥그릇의 뚜껑을 열게 된다.
이처럼 예와 도가 있어야 할 술의 의미와 인식이 쓰레기통에 떨어져 딩구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고,그것을 젊은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고 있다는 데 대해 우리 사회 전체의 도덕성을 탄식하거나 나무라고만 있어서 될 것 같지 않다.
김주영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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