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칼럼>이용대 산악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국내의 해외 고봉 등정사는 첫걸음부터 등정 의혹을 안고 시작됐다. 고산등반의 여명기라 할 수 있는 1970년 세계 최초로추렌 히말(7천3백71)등정에 성공했지만 뒤이어 오른 일본 원정대에 의해 등정 의혹이 제기됐고 공방만 거듭하다 매듭짓지도 못한채 끝났다.1984년에는 안나푸르나(천91) 를 국내 여성이 겨울 초등에 성공했으나 수년 후 외국의 유명산악인이 자서전에서 등정 의혹을 제기해 개운치 않은 여운을 남겼다.
등정 조작에 얽힌 사건은 우리뿐 아니라 서양에서도 있었다.북미 최고봉 매킨리(6천1백91)초등 조작극은 이 산의 이름마저바꿔놓을 뻔한 대표적인 사건이다.1906년 극지탐험가인 쿡 박사 일행은 매킨리를 초등했다고 발표하며 등정기록 을 책으로 펴냈다.그러나 일부 산악인들이 등정 의혹을 제기하면서 세상이 시끄러워지자 언론에서는 원래 이름인 「데날리(Denali)」를 부정이라는 뜻의 「디나이얼(Denial)」산으로 바꾸자고 말하기도 했다.
그후 1913년 스턱과 카스턴스에 의해 초등되면서 쿡 박사의거짓 등정이 밝혀졌다.
지난 연말 경남의 한 젊은 산악인이 자신이 이룩한 등정사실을부인하는 폭탄발언을 해 산악계에 파문을 일으켰다.그는 6년전 초 오유(8천21)를 한국인 최초로 무산소 등정했었다.그는 당시 정부가 수여하는 포상과 한국인 최초의 등정자 라는 명예까지차지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거짓이었다』고 양심선언했던 것이다.젊은 산악인의 양심선언은 히말라야 거봉 14개를 모두 등정한 것 이상의신선한 충격이었다.그는 진정으로 용기있는 산악인이다.이 일로 인해 그는 자신이 일궈온 생활 의 터전마저 잃게 될지도 모른다.함 께 등정한 동료 산악인들은 물론 그를 돕고 후원했던 모든이들로부터 미운 오리새끼로 따돌림당할지도 모른다.
등정 조작은 등산의 성과주의가 낳은 부작용이다.등산에서 정상에 오르는 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다.그보다 어떤 조건에서 어떤방법으로 오르느냐에 더 큰 의미를 두는 등로(登路)주의가 오늘날의 등산주류다.
등정 성과주의에 만연된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한가지 일화가 있다.
보이덱 쿠르티카(폴란드)는 험한 봉우리로 손꼽히는 가셰르브룸(7천9백25)정상을 50~60 남겨두고 등정을 포기했다.그는체력이 달려 나머지를 포기했다고 말했으나 세계 산악계에서는 그의 등반을 높이 평가했다.등반의 성과는 난도높은 서벽루트의 통과였지 정상에 오르는 것에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필자약력▶1937년 서울 출생▶중앙대 법대 졸업▶한국산악회편집위원▶한국산악회 산악연수원 강사▶코오롱등산학교 대표강사▶한국 산서회 부회장역임▶『한국산악 50년사』집필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