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대중문화현장>베이징 찻집 라오셔 茶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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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베이징(北京)사람치고 노상에서 차를 팔아 떼돈 번 찻집(茶館)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엄청난 돈을 벌었으니 그 찻집에서 파는 차가 독특한 향이나 맛을 지닌 걸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상은그렇지 않다.중국 어디에서나 마실 수 있는 평범 한 화차(花茶.재스민티)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이 찻집이 어떻게 그처럼 많은 돈을 벌어 억대 갑부가 됐을까.해답은 다소 엉뚱한 곳에 있다.찻집에서 단순히 차만마시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민간 전통예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톈먼(前門)에 위치한 라오셔(老舍)라는 곳이 바로 그 유명한 찻집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차와 전통예술을 결합시킨 문화의 광장인 셈이다. 매일 오후7시30분부터 시작되는 공연 프로그램은 손님을 끌기에 안성맞춤이다.중국 전통문화의 상징인 경극(京劇)을 필두로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서커스와 마술이 뒤따라 관객들의 탄성을자아낸다.여기에 단시앤(單弦)이라는 전통악기 반 주에 맞춰 베이징 민요가 감미롭게 이어지고 중국인들이 특히 좋아하는 만담(相聲)과 각종 새소리에서부터 기차.자동차 경주등 각양각색의 소리를 묘사하는 성대묘사도 일품이다.
짧은 2시간에 농축된 중국 전통문화예술을 감상할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라오셔차관은 언제나 손님들로 붐빈다.가라오케는 우후죽순처럼 늘지만 중국의 전통문화를 즐길 수 있는 곳은 베이징시내를 뒤져봐도 불과 열손가락에 꼽을 만큼 제한 돼 있어 외국관광객들이 찾는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때문에 조지 부시 전미국대통령을 비롯,헨리 키신저 전미국무장관,가이후 도시키(海部俊樹)전일본총리,왕딩창(王鼎昌)싱가포르대통령등 외국정상들도 중국 공식방문 때 바쁜 틈을 내 라오셔차관에 들렀을 정도다.
뿐만 아니라 양상쿤(楊尙昆)전국가주석은 주석 재임때 일반 시민 자격으로 이 찻집에 들러 경극을 감상했으며 리펑(李鵬)총리,송런치옹(宋任窮)전정치국원등도 라오셔차관의 주요 고객 명단에포함돼 있고 지난해 거액의 부패사건으로 중국정국 을 뒤흔든 천시퉁(陳希同)전베이징시 서기도 단골손님중 하나다.
이 찻집 이름은 본래 중국의 유명한 작가 라오셔의 이름과 그가 쓴 차관이라는 희극의 작품명을 합친 것이다.청대 말기에서부터 민국시기에 이르기까지 베이징시에 즐비했던 찻집에서 일어나는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사회상을 상세히 그려낸 차 관은 지금도 무대에 올려질 만큼 중국인들의 사랑을 톡톡히 받고 있는 작품이다. 사실 찻집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때 유행,1940년대말 베이징 시내에만 2백여개의 찻집이 있었을 만큼 성행했다.그러나 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특히 60년대 중반 문화혁명을 거치면서 『봉건주의 색채가 농후한 퇴폐적인 업소』라는 비판 을 받아전멸했다가 개혁.개방으로 되살아났다.
라오셔차관 인셩시(尹盛喜)사장은 『베이징에서 중국 전통민간예술,그것도 비교적 수준급의 민간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은 극히 드물다』면서 『수천년 역사의 차문화와 민간예술을 진흥시키기위해 88년 찻집을 열었다』고 소개했다.입장료는 무대에서 가장먼 좌석이 40위안(약 4천원)이며 가장 가까운 좌석은 1백20위안(약 1만2천원)으로 공연시간대는 차 한잔과 5~6가지의간단한 음식이 제공된다.
라오셔차관에서 멀지않은 곳에 경극만 전문으로 공연하는 리위안(梨圓)극장도 베이징시내에서 중국 전통문화를 감상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예술관이다.베이징 경극원과 톈먼호텔이 합작으로 개관한 리위안극장은 매일 오후7시30분부터 9시20분 까지 5~6편의 작품중 가장 잘 알려진 대목만을 골라 무대에 올리고 있다. ***인근 리위안 극장도 유명 경극에 나오는 대사는 고대(古代)에서 사용했던 중국어로 웬만큼 조예(造詣)가 있지 않는한중국인들 조차도 대사 내용을 알아듣지 못해 무대 한 켠에 대사를 자막으로 보여주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또 전시관에는 경극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가를 알 수 있는 경극 역사가 간단히 소개돼 있고 경극에 사용되는 탈이나 각종 분장도구.악기등을 파는 상점도 외국인들의 발걸음을 붙들게 하는 곳이다. 이 곳 역시 중국 차와 함께 간단한 음식을 제공하며 입장권은 무대에서 가장 먼 거리로부터 20,30,80,90,1백위안(약 1만원)짜리등 5종류가 있다.이와함께 서커스.곡예.
마술을 전문으로 공연하는 차오양(朝陽)극장도 중국문화의 진수를접할 수 있는 장소로 꼽히고 있다.
간담을 서늘케 하는 아슬아슬한 묘기가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고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미모의 젊은 여성들이 펼치는 각종 마술은 중국 서커스와 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어 각광받고 있다.
〈시리즈 끝〉 베이징=문일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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