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벌어 함께 나누니 파업 남의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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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골리앗 크레인은 노조 투쟁의 상징이었다. 90년 4월 120명의 노조원이 올라가 13일 동안 고공농성을 하면서 ‘골리앗 투쟁’을 벌였던 곳으로 유명하다. 노조는 93년과 94년에도 각각 40일과 63일 동안 파업을 벌이며 회사를 압박했다. 당시 현대중 노조는 민주노총 산하 최강경 노조로 군림했다.


하지만 회사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고수했고, 파업 일변도의 노조 집행부에 대한 노조원의 불만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95년엔 쟁의발생 결의만 한 채 파업 찬반투표도 못하고 임단협을 타결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무분규 타결’이 이어지면서 2002년엔 “정치투쟁 탈피, 조합원 복지 최우선’을 명분으로 내건 실용노선의 집행부가 들어섰고, 2004년 민주노총을 탈퇴해 독자적인 노선을 선언했다.

노조의 변신에 선박 주문 업체들도 감동했다. 2004년 미국 엑손모빌이 원유생산 저장시설을 발주하자 탁학수 당시 노조위원장은 “멋진 선박을 만들 기회를 줘서 감사한다. 노조가 책임지고 최고의 품질로 납기를 맞춰 주겠다”는 편지를 보내고 노조원을 독려해 납기를 3개월 당겼다. 이에 엑손모빌은 노조에 1000만 달러의 사례금을 전달했다.

올 3월에는 오종쇄 위원장이 회사 경영층과 함께 발전용 엔진 수주를 하러 쿠바를 방문, 카를로스 라헤 쿠바 부통령 등을 만나 “현대중공업에 어떤 공사를 맡겨도 노조가 책임지고 품질·납기를 준수하겠다”며 발주처에 믿음을 심어주기도 했다.

현대중은 지난해 15조5330억원 매출에 1조736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노조가 무파업을 시작한 95년에 비해 매출액이 4배, 영업이익이 6.5배나 늘어났다.

◇격려·축하금만 8가지=임단협 타결로 직원들은 임금 9만8800원 인상에 통상 임금 대비 725% 수준의 상여금과 연말 경영실적에 따라 최소 387%의 성과급을 받게 된다. 또 군산조선소 기공 축하, 노사공동선언 지속 실천 격려, 생산성 향상 격려, 무쟁의 타결 축하, 무재해 2배수 달성 격려 등 여덟 가지 격려·축하금으로 900여만원을 쥐게 된다.

18년째 근속해 온 생산직 A씨(45)의 경우 지난해 6700만원이었던 연봉은 올해 최소 7020만원으로 뛰게 된다. 지난해보다 기본급 120만원, 상여금 50만원, 격려·축하금 100만원, 휴가비 50만원이 각각 오르기 때문이다. 영업이익이 2조원을 초과할 때 추가로 성과급을 받을 수 있다.

오 노조위원장은 “노사가 하나 된 모습을 보여야 발주업체들이 안심하고 우리 회사에 발주를 할 것이고, 그래야 회사가 잘돼 노조원들에게 일자리가 생기고 봉급이 올라가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현대중 민계식 부회장은 “노조가 파업 자제는 물론 위원장이 수주활동까지 나서며 뛰어준 덕분에 세계 일류 기업이 됐는데 그 열매를 노사가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울산=이기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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