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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외국서 더 인정받는 가수 “성악가의 꿈 이뤄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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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22일 독일 바이로이트에서 중앙일보 기자의 전화를 받은 성악가 연광철(43)씨는 25일 있을 무대를 두고 ‘결정체’라고 했다. “처음에는 (저의 출연을) 의외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제가 그동안 쌓아온 경력을 보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죠. 저에 대한 음악계의 신뢰를 굳힐 수 있는 결정체예요.”

◇비유럽인 최초의 베이스 주연=독일 바이에른주의 북쪽 도시 바이로이트는 1876년 이래 매년 바그너의 작품만 공연하면서 전 세계 음악팬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이다. 작곡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벌인 곳으로 바그너의 ‘성지(聖地)’로 불린다. 지금 예매하면 수년 후 공연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오페라 팬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연씨가 25일 출연하는 작품은 한 달 동안 열리는 ‘2008 바이로이트 축제’의 개막작인 바그너 오페라 ‘파르지팔’이다. 베이스 음역인 그는 ‘구르네만츠’ 역을 맡았다. 오페라의 주인공은 보통 테너가 맡으며 베이스가 주인공인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구르네만츠’는 베이스의 역할 중 가장 비중 있는 배역으로 꼽힌다. 전체 이야기를 풀어 설명하는 인물로, 주인공 ‘파르지팔’보다 청중에게 더 큰 사랑을 받기 때문이다. 이 축제의 개막작에서 ‘구르네만츠’를 유럽 이외 지역 성악가가 맡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씨는 1996년부터 바이로이트 무대에 섰다. 바그너 ‘본토’에서 뿌리를 내린 12년. 그에게 이번 무대의 의미는 특별하다. 2002년 ‘탄호이저’의 헤르만 성주, 2005년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역 등을 맡으며 실력을 인정받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모든 베이스들이 하고 싶어 하는 역이죠. 게다가 올해는 앞으로 5년 동안 바이로이트에서 공연될 새로운 연출이 선보이는 해예요. 남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공고, 지방대에서 세계의 중심으로=그가 말한 ‘결정타’는 한국 음악계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연씨는 충북 충주에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청주대에서 성악을 공부했다. 고교 졸업 후 건축기능사 자격증 시험에서 떨어지고 ‘음악 교사가 되자’며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길이었다.

국내에서 묻혀 있던 그의 진가는 독일로 유학을 떠난 후 빛을 발했다.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같은 거장이 그의 목소리를 알아봤다. 그리고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가수로 자리 잡았다. 바이로이트는 물론 베를린·빈의 국립오페라 극장에서 전속 주역, 고정 게스트 등을 맡으며 활약했다.

이번 ‘파르지팔’은 주목받는 오페라 연출가인 스테판 헤르하임의 작품이다. “18일에 총연습을 마쳤어요. 완성도가 굉장히 높아서 만족스러워요.”

전 세계의 오페라 팬이 지켜볼 ‘파르지팔’은 무대 위 커다란 침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등장 인물들이 태어나고, 생을 마치는 곳이다. 바그너의 작품 중 종교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분류되는 이 작품을 연출가는 꿈과 환상이 현실과 교차하는 분위기로 그려 선보인다고 한다. “바그너가 살았던 곳인 빌라 반프리트에서 시작해 독일의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끝납니다. 1900년대 초부터 현재까지 독일 역사를 표현하는가 하면 어느새 환상을 이야기하고 있는 연출이에요.”

이번 무대에 대한 연씨의 설명에 어느새 그의 인생 여정이 오버랩된다. “성악가로서 희망만 하던 ‘환상’들이 하나 둘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이번 무대도 그렇게 되길 소망합니다.”

김호정 기자

◇바이로이트 음악 축제=독일의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는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1813~83)에게 음악적 ‘유토피아’였다. 정치적 신념으로 가담했던 혁명이 실패하고 스위스 취리히로 망명해있던 바그너가 자신만의 극장을 갖게 된 곳이기 때문이다. 바그너는 한적한 이 마을에서 음악에만 집중하기를 바랐고, 그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바이에른의 국왕 루드비히 2세는 그 뜻에 따라 전용 축제 극장과 살 집을 지어줬다. 그의 음악만을 연주하는 바이로이트 축제는 1876년 시작, 현재는 그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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