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 cover story] "고집 세우지 말고 자식 뜻 따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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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누군가를 상담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로 엇비슷한 나이니깐 살아온 경험도 얼추 비슷하고, 처지도 이해하기 쉽지 않겠어요. 그저 속내를 충분히 털어놓을 수 있다면 상담의 70%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죠."

사회복지단체 '한국 노인의 전화'에서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강병만(74)씨의 상담관이다. 1994년 창립 멤버로 노인의 전화에 발을 들여놓은 지 10년. 이젠 "'여보세요'라는 목소리만 듣고도 대충 어떤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지 어림짐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베테랑 카운슬러가 됐다. 하루에 평균 10통 이상 전화 상담을 해준단다. 지금껏 월급 한푼 받지 않고 이 일을 하고 있다. 10여년 전까지 그는 조그마한 무역상을 운영해 온 기업인이었다. 현업에서 은퇴하고 갑자기 할 일이 없어진 그가 선택한 곳이 노인복지기관 자원봉사였다.

"특별한 의무감이나 봉사심에서 시작한 건 아니고요. 은퇴하니 시간은 많아지는데 매일 술마시고 집에 늦게 들어오고 생활이 영 헝클어지더군요. 짜임새 있게 하루를 보내려고 소일거리 삼아 시작했는데 이렇게 발목이 잡혔네요. 허허."

10여년간 어려운 처지의 노인들을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다 보니 노인 문제 상담에 관한 한 전문가나 대학교수보다 더 '달인'이 됐을 정도다. 노인의 전화에서 일하는 한 상담원은 "'옛날에 고려장이 왜 있었는지 알 것 같다'는 얘기가 오갈 만큼 고부간의 갈등이 극도로 치닫는 사례가 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으면 우리도 결국엔 강국장님을 찾게 된다"고 말했다.

노인 문제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했는지도 그는 당연히 꿰뚫고 있다. "90년대 중반까진 노인 취업 문제에 대한 상담이 가장 많았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 후 청년 실업 문제가 불거져 노인 일자리 얘기는 아예 꺼낼 수도 없게 됐죠. 최근엔 노부부 간 혹은 노인과 자식 간 갈등, 홀로된 노인의 고통 등 가정 해체에 따른 고민이 많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가 생각하는 노인 문제의 해결 방안은 무엇일까. "이젠 자식에게서 효(孝)를 받는 시대가 아니라 보호받는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노인이 피보호자이니 만큼 자기 고집을 내세우기보다 보호자인 자식의 뜻을 잘 따라야겠죠. 가능하면 속상한 것은 저에게 털어놓으시고 자식 비위 맞춰 가며 건강하게 살아가자고 말합니다."

글=최민우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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