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5 현장 관찰] 13. 국민 수준이 정치 수준이다 (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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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한국-말레이시아전에서 경기도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에 꼭 참여합시다'라는 카드 섹션을 벌이고 있다. 이날 경기에서 한국이 3-0으로 말레이시아를 완파하고 4연승을 올렸다. [수원=최승식 기자]

투표일이다. 299명의 17대 국회의원을 뽑는 날이다. 13일의 열전은 끝났다. 1358명의 후보자가 뛰고 달렸다. 전국을 누볐다. 시간이 아쉬운 후보자도 있을 것이다. 가야 할 길이 더 남은 후보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승부였다. 돈선거, 흑색선전, 조직동원이 확 줄었다. 17대 총선은 선거문화 혁신의 기원을 이뤘다.

오늘은 유권자가 승리할 차례다. 투표장에 나가는 일이다. 투표는 권리이자 의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자란다. 투표자 수가 많아야 의원의 국민 대표성이 높아진다. 대표성이 높아야 책임의식도 올라간다. 유감스럽게도 전국선거의 투표율은 회를 거듭할수록 하락했다. 1987년 이후 하강, 하강, 또 하강이었다. 대통령선거에서는 89.2%(87년)→81.9%(92년)→80.6%(97년)→70.8%(2002년)로 낮아졌다. 국회의원 선거는 75.7%(88년)→71.9%(92년)→63.9%(96년)로 떨어졌다. 급기야 2000년 16대 총선에선 역대 최저인 57.2%로 떨어졌다.

▶ 이준한 교수

<인천대 정외과>

흔히 16대 국회는 최악이란 평가가 있다. 혹시 유권자가 탄생부터 참여와 관심을 쏟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된다. 국민이 선거를 외면하니 국회가 국민을 무시하는 사례를 보여준 것은 아닐까. 책임과 고통은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 부메랑 효과다. 유권자의 참여 수준이 국회의 수준이다.

다행히 중앙선관위의 유권자 의식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응답이 77%라고 한다. 16대의 46.1%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기대를 갖게 한다. 초유의 탄핵사태와 노인폄하 발언 등이 유권자의 관심을 높인 것 같다.

비운동권 대학총학생회 조직인 '학생연대21' 소속 이진한 한양대 총학생회 정책국장은 "이번 선거는 탄핵 문제에 대해 관심이 크고 민주노동당의 약진 등 정당의 선택 폭이 넓어져 대학생과 20~30대가 투표를 많이 할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들은 '깨끗한 손으로 깨끗한 정치를 하자'는 뜻에서 물수건을 배포하거나 '(민주주의)꽃씨 나누어주기' 이벤트를 벌였다.

14일 찾은 인천시 남구 소재 한 경로당의 할머니 10여명. 일부는 노인 폄하 발언에 분노했고, 다른 일부는 그 쟁점에 무관심했다. 그래도 모두 투표장에 나가겠다고 했다.

통상 여성의 투표율은 남성보다 낮다. 그러나 이번 선거전에서 두드러졌던 여성 파워가 여성 유권자들에게 투표 의욕을 자극하는 면이 있다. 인천시청 여성정책과 관계자는 "각종 여론조사 등을 성별로 분석해 보면 여성들이 과거에 비해 선거 쟁점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중립적인 입장의 일부 시민단체와 네티즌들의 투표 참여 캠페인도 활발하다.

여행업계에 따르면 총선 다음날인 금요일 휴가를 내 황금 연휴를 즐긴다는 이른바 '총선 특수'는 없다고 한다. 이런저런 요소들을 보면 수십년래 투표율 하락 추세가 이번에 처음으로 멈출지 모른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사실 국회의원 선거의 50%대 투표율은 통념과 달리 선진국에선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다. 미국이나 스위스 정도가 그런 수준이다. 미국의 낮은 투표율은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유권자 등록제도 등 선거 절차가 복잡하고 투표일은 공휴일이 아니다. 그나마 출퇴근길이나 점심시간을 쪼개 투표하는 유권자들에 의해 미국 의회는 국민의 기관으로 지탱되고 있다.

이제 수준 높은 한국 국민이 수준 높은 국회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할 때다. 구름이 있으나 초여름 같은 날씨가 예상되는 선거일에 유권자들이 씩씩하게 투표장으로 향할 것을 기대해본다. 국민의 수준이 정치의 수준이다.

이준한 교수 <인천대 정외과>
사진=최승식 기자<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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