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이코노미>다운사이징의 역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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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규모를 줄인다는 다운사이징(downsizing)이란 말은 70년대초 미국의 자동차산업계에서 처음 생겨났다.자동차의 크기를줄인다는 뜻이었다.82년부터 이 말은 「작고 날렵해지기」라는 뜻의 기업경영 용어로 일반화됐다.이 다운사이징이 미국 기업자본주의의 근저를 흔들고 있다.
미국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79년부터 93년사이에 없어진 일자리는 3천6백만개에 달한다.물론 새로 생겨난 일자리도 이에 못지않다.그러나 새 일자리는 대부분 영세 소기업들이 창출해 급여와 후생복지가 박하고 많은 경우 시간제 근무다.
그동안 레이오프(layoff)는 일시적 해고를 의미했다.조업을 단축하는 몇주 내지 몇달을 집에서 쉬고 정상화되면 직장으로복귀했다.지금의 레이오프는 「기약없는 굿바이」다.「일자리 안보」에 비상이다.
기업들은 이 모두를 기술변화와 글로벌경제 탓으로 돌린다.
기업수익이 오르면 해고는 줄어드는 것이 80년대까지의 관례였다.지금은 기업수익이 오르면서 해고도 많아진다.물론 생산성및 효율향상 몫도 크다.대량해고 계획을 발표하기가 무섭게 그 기업들의 주가가 크게 치솟는 기(奇)현상도 계속된다.
경영혁신의 이름으로 종업원들을 희생시켜 주주들만 살찌운다는 항변도 무리는 아니다.
좋은 기업은 이윤을 많이 낸다.그러나 이윤을 많이 내는 기업이 곧 좋은기업은 아니라고 한다.「좋은 기업」 논쟁이다.이익을많이 내 주주에게 많은 배당을 안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고 그기업 부(富)의 창출에 「이해가 걸린」(sta ke)종업원과 납품업체등 협력업체,그리고 그 제품을 사주는 고객들을 살찌워 사회공동체의 이익을 크게 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다.
주주(shareholder)에 대칭시켜 이들을 「스테이크홀더」(stakeholder)로 부른다.영국노동당의 40대 기수 토니 블레어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들고나온 「좋은 기업」의 캐치프레이즈다.
토니 블레어는 친(親)노동당계 신문 가디언의 경제부장 윌 허톤의 저서 『우리 모두의 국가』에서 힌트를 얻었다지만 아직 그개념은 정립이 덜 된 상태다.블레어와 클린턴은 옥스퍼드 동문에다 근년에 몇차례 접촉을 가졌다.연초 블레어의 싱가포르 연설 「스테이크홀더 사회」,그리고 클린턴의 연두 국정연설은 같은 맥락이다.같은 옥스퍼드 동문으로 클린턴의 아이디어 맨인 로버트 라이시 노동장관은 최근 조지 워싱턴 경영대학원 연설에서 「좋은기업시민들」이란 개념으로 좀 더 구체화했다.
다운사이징이 몰고 온 「스테이크홀더 자본주의」의 역풍이다.
〈본사 칼럼니스트〉 변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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