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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하락 이점은 왜 외면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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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7월 16일자 경제섹션에 정부의 환율정책을 비판하는 배선영 수원여대 교수의 기고가 실렸습니다. 이만우 (사진)고려대 경영대 교수가 이 글을 반박하는 원고를 보내왔습니다.

1997년 외환위기 원인 중 하나로 반도체 호황과 그로 인한 과잉 유입 달러에 대한 대응 실패가 꼽힌다. 요즘은 조선업계의 과잉 달러가 비슷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조선 회사들이 들여온 거액의 외화선수금이 원화 가치를 끌어올려(환율 하락) 다른 수출업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지적이다. 그동안 정부는 급격한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외화를 계속 사들여 외환보유액이 2600억 달러에 이르게 됐고, 외화 매입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통화안정증권 발행으로 한국은행의 이자 부담이 새로운 골칫거리로 등장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범한 강만수 경제팀은 다른 업종의 수출경쟁력을 위해 원화 가치를 낮출(환율 상승) 것임을 시사했다. 그 결과 올 3월 환율은 4% 정도 올라 달러당 980원대로 들어섰고, 5월엔 1040원선까지 올라갔다. 사실 새 정부 초기의 환율정책은 구두 개입 수준에 지나지 않았지만 때마침 국제유가 폭등과 국내 증시의 외국인 매도 지속으로 인한 달러 수요가 겹쳐 환율은 빠르게 상승했다. 이런 상황에서 중소 수출업체들이 환율 하락 위험을 피하기 위해 매입한 파생상품(KIKO)에서 큰 손실이 발생했다. 최근 정부가 외화 매각을 통해 환율 상승을 억제함으로써 이런 손실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고 있다. 환율 하락은 고유가로 인한 가계와 기업의 부담도 덜어주고 있다.

정부가 몇 달 만에 이렇게 환율정책을 바꾼 것을 비판하는 소리도 있다. 일부에선 소중한 외환보유액을 축내는 무책임한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그렇게 매도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보유 달러를 팔면 시중의 통화량은 줄어들어 물가 안정에 도움이 된다. 지금 우리가 세계 6위의 외환보유국이 된 것은 환율 하락을 막기 위해 정부가 계속 달러를 사들인 결과다. 정부가 시장상황을 봐가며 외화를 매입 또는 매도하는 것은 고유 기능이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너무 과격하다는 지적도 있다. 외환시장은 사고파는 주체가 치열하게 대결하는 전쟁터 같은 곳이다. 시장의 중요한 축인 정부가 교통정리용 거래(smoothing operation)만 한다는 인상을 준다면 거대한 자금력을 지닌 환투기 세력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다. 온건한 거래 전략을 기조로 하되 과도한 쏠림에는 깜짝 놀랄 만한(surprise)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시장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환율이 어떤 방향으로 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환율이 계속 올라가면 외국인 주식 투자자들은 회수할 달러 가치가 줄어들기 때문에 한국 증시를 떠나게 된다. 따라서 환율 안정을 위한 정부의 개입은 주식시장 안정을 유도하는 효과도 있다. 수출기업의 생산성을 높여 무역흑자를 내고, 국내 기업의 투자 활성화로 적정 이익률을 유지해 외국인의 주식 매입이 지속되면 환율 안정에 문제가 생길 여지가 없다. 정부는 환율을 비롯한 모든 정책의 목표를 기업 경쟁력 제고에 두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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