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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1kg 얻는데 곡물 16kg 필요 … 엄청난 경작지 낭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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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호 11면

-1970년대 피터 싱어의 『동물해방』이란 책을 읽고 난 뒤 채식주의자가 됐다고 들었습니다. 그 후 삶이 어떻게 바뀌었습니까.

Special Report ‘채식 열풍’ 그 후 최재천, 제인 구달에 ‘희망의 밥상’ 을 묻다

“내 접시에 놓인 한 조각의 고기를 보면서 ‘공포-고통-죽음’이 연상돼 도저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고기는 물론 생선도 안 먹기 시작한 후 몸이 가벼워지고 에너지도 훨씬 더 넘치는 것을 실감했지요. 내가 계속 고기를 먹고 지냈다면 지금 같은 강연 여행 스케줄은 도저히 소화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구달 박사는 1년에 300일 이상 세계 각국을 돌며 침팬지 연구와 ‘뿌리와 새싹’이라는 생태·평화운동을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오랜 세월 육식에 길들여져 왔습니다. 육식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을 텐데, 박사가 말하는 ‘희망의 밥상’을 차리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고통이나 공포·절망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만 합니다. 사고 능력을 가진 동물도 많습니다. 웬만큼 복잡한 뇌 구조를 가진 동물이라면 제가끔 개성도 있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런데 공장식으로 밀집 사육되는 식용 가축들에게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아시나요? 그들의 사육 환경은 그야말로 끔찍합니다. 엄청난 스트레스는 물론이고, 걷기 어려울 정도로 다리가 약해지는 것과 같은 온갖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런 일은 인간을 위해서도 용납해선 안 됩니다. 동물들에게 주기적으로 투여하는 항생제가 자연환경에 유입돼 세균들의 내성을 키웁니다. 그래서 항생제를 아무리 써도 사망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장촉진 호르몬의 남용도 문제입니다. 호르몬을 투여해 키운 닭고기를 많이 먹고 자란 멕시코 여자아이들은 5세 때 가슴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육식은 환경에도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구상 경작지 중 많은 부분이 가축 방목이나 사료 식물 재배에 이용되고 있습니다. 식물성 단백질을 동물성 단백질로 바꾸느라 쓸데없는 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희망의 밥상』에도 썼지만 쇠고기 1㎏을 얻는 데 미국 목축업자들의 주장으로는 4.5㎏의 곡물 사료, 미국 농무부 경제연구소 분석으로는 16㎏이나 되는 곡물 사료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또 엄청난 양의 물이 사육에 쓰입니다.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물 부족 사태를 생각할 때 끔찍한 일입니다. 또한 가축을 밀집 사육하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비율이 크게 올라가 지구온난화를 심화시킵니다.”

-앨릭스라는 조카 손자도 열렬한 채식주의자라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채식을 가르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앨릭스는 네 살 때 어느 날 치킨 한 조각을 가리키면서 ‘이게 무엇으로 만든 거죠?’라고 묻고는 곧바로 채식주의자가 됐어요. 암탉으로 만든 것이라는 엄마의 말에 살아 있는 닭이 생각나 먹기 싫어진 거죠. 많은 아이가 이런 느낌을 갖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고기를 꼭 먹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식단을 짜기 때문에 아이들도 결국 혐오감을 잊게 되지요. 부모들 생각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신체 구조상으로도 인간에겐 채식이 더 맞는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침팬지도 육식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보면 과연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침팬지는 인간과 마찬가지로 잡식성 동물입니다. 다만 고기를 아주 조금, 즉 연간 음식 섭취량의 2% 정도만 먹습니다. 대신 곤충을 많이 먹죠. 사실 침팬지나 인간의 이빨·턱, 그리고 장은 육식에 적합하지 않은 형태입니다. 육식동물은 먹은 고기가 빨리 몸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끔 장이 짧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몸에 해롭거든요. 그런데 침팬지나 인간은 모두 장이 깁니다. 좋은 환경에서 잘 사육해 도축한 고기는 약간 먹어도 문제가 없습니다만 식물성 식품이 더 적합하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에선 광우병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습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는 여성 중에는 채식주의자이거나 채식에 관심을 가진 이가 많습니다. 문제는 이 움직임이 한때의 ‘유행’으로 끝나 버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채식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든 이슈에 대해 깨어 있는 태도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도 한국에서 일어난 광우병 논란을 계속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양한 수준의 채식주의자에 대한 기사나 그에 관한 학교 교육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너무 극단적으로는 몰아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한번은 미국에서 강연회와 저자 사인회를 마친 늦은 밤에 창백하고 다소 지저분해 보이는 한 남성이 다가온 적이 있습니다. 그는 ‘베건(vegan·달걀이나 유제품도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에 관한 팸플릿을 들고 ‘구달 박사님, 전 당신과 당신이 하는 일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박사님을 비난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당신은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습니다. 베건이 되셔야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정중하게 ‘여행을 다니다 보면 채식을 고집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고 설명했습니다. 영양 면에서 균형이 잡히지 않은 완전 채식으로는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고, 식당들도 채식주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얘기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가방에 먹을 것을 직접 싸 가지고 다니며 저녁에 숙소에서 요리해 먹으면 됩니다’라고 말하더군요. 상상해 보세요. 한밤중에 호텔 방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이런 사람들은 오히려 채식주의에 대한 관심을 확산시키는 데 해가 됩니다.”



최재천 교수는 …
최재천(55)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서울대 동물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학위를, 하버드대에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간 본성에 대하여』로 유명한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이기도 하다. 『개미제국의 발견』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등의 베스트셀러가 있다. 제인 구달 박사가 1996년 방한했을 때 처음 인연을 맺은 뒤 동물학자로서는 물론 생태·평화운동가로서 절친한 동료로 교류하고 있다. 최근 광우병 논란을 계기로 거의 채식주의자가 다 됐다는 최 교수는 “우리 모두의 건강을 위하고 하나밖에 없는 지구를 살리는 이 길에 구달 박사와 동행하면 좋겠다”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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