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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을 스타일리시하게 넘기는 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호 15면

얼마 전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서 이런 기사를 봤다. 요약하면 ‘불황을 스타일리시하게 넘기는 법’쯤 될 텐데, 미국의 상위 10% 부자들에게서 불황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을 듣고 정리한 내용이었다. 가려 뽑은 답변들은 이랬다. 가장 힙한 레스토랑에서의 외식비용, 여행할 때 묵는 최고급 호텔 스위트 룸, 그녀에게 선물할 보석,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의 박스 석, 최신 스마트 폰, 투자 개념만은 아닌 예술 작품 구입 등등. 흥미로운 건 상위 10%에 속한 부자들도 피해 가지 못하는 대목이 있다는 점이다. 그 답은 바로 “새 차를 사고 집을 리노베이션하는 정도는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 미뤄도 되겠지”였다.

똑같은 질문을 주변에 던져 봤다. 다른 게 있다면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은 아니라는 것. 어느 이탈리아 레스토랑 대표는 “트렌드를 읽기 위한 여행과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대중교통 이용”을, 어느 패션 브랜드 MD는 “각 브랜드에서 출시되는 클래식 아이템”을, 어느 호텔 총지배인은 “아내의 나라인 말레이시아로 떠나는 여행과 퇴근 후 하루를 마감하는 레드와인 한 잔”을, 어느 사업가는 “퍼스트 클래스 좌석”을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준 답변은 어느 수트 브랜드의 홍보 담당자가 말한 “기분 전환을 위한 월 1회 헤어스타일 바꾸기”였다. 설득력이 있건 없건 답변을 챙기면서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자신의 위치를 최대한 반영한 답변들의 진정성 때문이었다. 물론 그들 중 누군가는 바로 지금 눈물을 머금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중일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불황이다. 몇몇 매체에서는 ‘제2의 IMF, 3차 오일쇼크’에 준하는 상황이라는 호들갑 섞인 진단도 내놓는다. 다른 건 몰라도 ‘IMF’와 ‘오일쇼크’라는 단어의 뉘앙스가 열대야보다 더 짜증스럽다는 반응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뭘 할 수 있겠느냐며 손 놓고 기름값만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 와중에 얼마 전부터 우리 팀 에디터 하나가 눈에 띄는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블루칩으로 분류되는 젊은 화가의 그림을 사 모으고, 리코 GR D2라는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했으며, 고가로 구입한 자전거의 안장과 페달을 튜닝했다. 뜬금없이 윤기 좔좔 흐르는 에나멜 슈즈나 꽃무늬 스카프를 구입해 팀원들을 기함하게 만들던 캐릭터라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누가 뭐래도 유가 고공행진 중인 불황기 아닌가. 궁금해서 물었다. “왜 그래? 갑자기 돈이 남아돌아?” 그가 답했다. “‘불황을 스타일리시하게 넘기는 법’이라는 기사도 안 보셨어요? 너무 불황 불황 하니까 정신에 윤기가 안 돌아서요.”



글쓴이 문일완씨는 국내 최초 30대 남자를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의 편집장으로 남자의 패션과 스타일링 룰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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