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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꼰대가 된 걸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71호 15면

옛날 내가 어릴 적에는 화장지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 정성껏 오린 신문지가 화장실 벽에 박힌 대못에 꽂혀 있었을 뿐이다. 동네 금은방에서 힘들게 얻은, 얇은 흰 종이로 된 일력이 걸려 있을 때는 정말 행복했다.

조동섭의 그린 라이프

“아, 이 무슨 꼰대 소리인가” 하며 신문을 덮으려는 분도 있겠다. 나도 안다. 저게 꼰대 소리인 줄. 이 글의 연재를 시작할 때, 나는 ‘옛날이 좋았지’ 하는 회고조의 글이나 거리의 잡초도 아름답게 보자는 투의 훈계조 글은 쓰지 않겠다고 혼자 다짐했다. 아니, 이 지면뿐 아니라 다른 글에서도 그런 생각을 옮기기는 싫어하며, 그런 생각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는 검소와 절약을 강조하는 것이 청교도적이며 나아가 자본주의를 공고히 할 뿐이라고 생각했다. 검소와 절약을 실천하기보다 무용하고 무익한 아름다움에 탐닉하며 화려하게 분칠하고 공작 깃털 부채로 부채질하고 있는 댄디즘의 삶을 사는 것이 훨씬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이삼십대 시절에는 당연히 그렇게 살았고, 불혹을 넘긴 이삼 년 전만 해도 나는 여전히 미혹의 삶을 예찬했다. 그런데 그런 내가 부끄러워졌고, 그 부끄러움에 내 살림살이를 되돌아보고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생활을 위해 실천할 일들이 무엇일지 공부를 시작했고, 그래서 이런 연재까지 하게 됐다. 나이 때문일까? 어느새 나도 입만 열면 훈계조의 말이 튀어나오는 꼰대가 되어버렸는지도.

나는 내세울 것도 없고 그리 잘나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점이 있다면, 그것은 내가 부끄러움을 알고 깊이 뉘우칠 줄도 알며 과거의 잘못을 고쳐 나가려 애쓸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이다(이렇게 자찬을 늘어놓는 걸 보면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인 듯도 하다). 그렇다. “옛날에는 이랬는데”라거나 “전등불 하나라도 절약하라” 같은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아 지긋지긋한 꼰대 소리’라고 생각했던 나는 부끄러운 과거의 나다.

그러나 내 생각이 바뀐 것은, 그 바뀐 생각과 실천이 나에게 어떤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은 아니다. 내 조카를, 내 사랑하는 친구의 아이를, 그리고 그 누구에게는 사랑하는 자식이며 사랑하는 조카이며 사랑하는 친구의 아들딸일 아이들을 생각하고, 그들의 살아갈 미래의 땅을 생각하게 됐기 때문이다. 요즘은 TV에서도 고유가 시대의 절약 정신을 이야기하며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소개한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나와 내 가족의 이익만 염두에 둔 것은 금방 잊혀지기 쉽다.

눈앞의 이익만 생각하는 실천이라면 무용한 일에 힘쓰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글쓴이 조동섭씨는 번역과 출판 기획을 하는 한편 문화평론가로 대중문화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 친환경주의자로서의 싱글남 라이프스타일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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