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1총선후보밀착취재>6.끝.어느 신인 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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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스꽝스런 유희.』서울에서 B정당의 공천으로 출마한 A후보.그는 자신의 준법선거를 위한 그동안의 노력을 이렇게 표현했다. A후보는 말 그대로 신인.정치를 전혀 모른다.지난해 12월중순 야당인 B당의 영입제의를 받았다.
당시 경쟁적으로 벌어지던 영입경쟁에서 A후보의 지명도를 주목한 B당이 공천을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망설임 끝에 「가보지 않은 길」을 가기로 했다.
정치가 달라져야 한다는 믿음과 한번 그 작업에 참여해보고싶다는 열정이 이유였다.그러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거대한 벽이었다. 우선 급한대로 친구 사무실을 빌려썼다.
며칠동안 많은 손님들이 찾아왔다.그중 적지않은 지방자치단체 의원들도 있었다.이들은 한결같이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당선은 문제없습니다』고 지원을 다짐했다.
지역사정에 어둡던 A씨는 눈물이 나올 정도로 고마웠다.그러나감격이 당혹으로 바뀐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지원」의 전제는 돈이었다.뿐만 아니었다.지방선거 낙선자들도 찾아왔다.모두가 무시할 수 없는 「유지」였다.
요구액을 더하면 수억원.A씨는 고민했다.
며칠을 고심한 끝에 그는 자신의 몇가지 다짐을 지구당에 공표했다.『적어도 세가지는 하지 않겠습니다.탈법.부정선거자금.상대후보비방은 나에게 없습니다.』「이상(理想)수호」선언이었다.그러자 현실의 반격이 뒤따랐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때문이었다.운동원들이 빠져나갔다.같은 B당의 바로 옆 지역구로 30명이 「이적」했다.10명은 아예 상대후보,즉 적진에 넘어갔다.
이때만도 『그럴 수 있다』고 했다.A씨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교단경험이 있는 부인의 제자 20여명이었다.선거꾼과 달리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나선 젊은이들이었다.
그런데 하루이틀 지나면서 이들도 한둘씩 안보이기 시작했다.보름후엔 사무실이 텅비었다.『지하철표 한장 안주는데 누가 남아요.』이유를 묻는 A씨에게 당연하다는듯이 돌아온 핀잔이었다.
물론 A씨도 최소한 밥값이나 교통비는 주고 싶었다.그러나 법은 이를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슬슬 거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동(洞)책들이 대놓고 『돈 안쓰고 어떻게 운동하란 말이냐』고 대들었다.『백만원씩 두세번은 주쇼』라는 으름 장도 있었다. 지구당 핵심간부를 바꾸려다 봉변을 당했다.당사자는 술먹고 행패를 부렸다.결국 이 간부를 그대로 둘 수밖에 없었다.자신이데려온 선거참모는 기가 질렸는지 그만두겠다는 타령이었다.
어쨌든 개편대회는 법대로 치렀다.돈도 규정대로만 썼다.그사이가 10년같았다.그러나 여론조사결과는 충격이었다.조직책지명 당시에 비해 여성유권자 지지율이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상대후보는 10%포인트 상승.남성의 경우 7%포인트 상승으로1%포인트 상승에 그친 상대후보를 제쳤지만 위로가 안됐다.종합판정은 「운동방법의 개선 없이는 당선불가」.여성유권자는 운동한만큼 표로 이어져 여성지지하락은 심각하다는 진단 이었다.
이제 A후보의 앞에는 세가지 선택이 놓여있다.계속 법대로 하다 떨어지느냐,출마를 포기하느냐,남들처럼 하느냐….
『뻔히 알면서 떨어질 길로 갈 수는 없습니다.떠오르는 얼굴이많아 출마포기도 어렵습니다.깨끗하다는 사람들도 알아보니 할건 다하더군요.』익명을 전제로 A후보가 털어놓은 고백에서 그의 변신을 예감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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