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북카페] 신자유주의 경제 ‘탈출구’는 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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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
장하준·아일린 그레이블 지음
이종태·황해선 옮김, 부키, 280쪽, 1만3000원

『나쁜 사마리안인들』『쾌도난마 한국경제』 등을 낸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경제학)의 책을 읽을 때면 늘 두 가지 감정이 교차한다. 분노와 답답함이다. 미국 등 선진국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신자유주의 폭력을 행사한다는 지적을 접하면 그들의 행태에 분노가 치민다. 그러면서도 이런 세상을 바꾸기 위해 후진국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는 ‘대안 부재’의 상황에는 가슴이 답답해진다. 특히 외환위기 10년 만에 다시 경제위기가 찾아오고 있는 요즘에는 이런 복잡미묘한 감정이 더욱 커진다.

다시 외채가 급증하고 있다. 곧 대외채권보다 외채가 더 많은 순채무국이 된다고 한다. 벌써부터 외환위기가 재연되지 않을까 가슴이 콩닥콩닥한다. 이런 때는 “외채가 채무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된다”는 신자유주의자의 견해는 귓전에 들려오지 않는다. 오히려 “금융시장 개방 후에 한국은 투자부진에 빠졌다”는 저자들의 주장에, 동의 여부를 떠나 귀가 솔깃해진다. 외채는 “거품경제와 과잉투자를 조장하고, 금융불안을 격화시켰다” “외채 상환부담 때문에 국민경제가 붕괴될 수 있다”는 지적에 ‘쪽집게’란 느낌마저 든다.

외국인 투자자가 연일 주식을 팔고 빠져나가는 상황에서는 외국인 포트폴리오 투자가 “투자와 성장의 선순환을 가져온다”는 주장보다 “경제 불안정성을 초래한다” “주식시장의 붕괴로 금융위기가 초래된다”는 설명에 더 공감이 간다. 외환보유고를 풀어서라도 환율 상승을 막으려 애쓰는 정부 행태를 보면서는 “변동환율제에서 일어나는 급작스러운 대규모의 통화가치 변화는 개발도상국에 상당한 비용을 치르게 한다”는 의견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거처럼 고정환율제나 바스켓 방식의 복수통화 변동환율시스템으로 돌아가면 어떨까라는 생각마저 든다. 자국 돈을 외화와 바꾸려면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하는 통화태환제와 고정환율제를 시행하면서도 욱일승천 하는 중국의 성공 사례에 이르면 공감은 더 커진다. 외자를 유치하려면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적 견해를 배격하면서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데도 외자가 엄청 몰리지 않느냐”는 반론도 그렇다. 세계화가 미워질 때도 있다. 우리가 잘못한 게 없는데도 다른 나라의 경제불안이 고스란히 전파돼 덩달아 불안해지는, 이런 ‘만성적 공포’의 세상을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가 싶어서다.

그러면서도 늘 그렇듯 장 교수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분석은 시원하고 명쾌하지만 ‘그럼 대안은 뭐냐’는 물음에는 분석만큼 분명치 않다. 그도 이런 비판을 많이 들은 모양이다. “일부 대안은 개발도상국에서 실행하기 어렵다, 심지어 불가능하다는 주장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앞서 나온 책들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적 경제정책’에 훨씬 더 많은 비중을 할애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지 싶다.

그러나 우리가 중국처럼, 또는 과거 개발 연대 시절처럼 할 수 있을까. 저자들이 제시한 대안처럼 금융시장을 제한적 개방시스템으로 바꾸고, 외국인투자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것만 받고, 통화 태환제와 고정환율제를 실시할 수 있을까. 그러기엔 우리는 너무 많이 자유화·개방화·세계화돼 있다. 지금의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되돌아가는 데는 치러야 할 비용이 너무 크다.

또 중국은 최악의 경우 ‘로빈슨 크루소 경제’처럼 살 수 있지만 우리는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렇다고 실현 가능한 대안 찾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는 저자들의 열정마저 평가절하할 순 없지만 말이다. 공저자 아일린 그레이블은 덴버대 국제대학원 경제학 주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김영욱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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