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간장 有害소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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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우리 속담에 『간장맛이 변하면 집안이 망한다』는 말이 있다.
된장.고추장과 함께 우리 음식문화의 핵심적 요소인 간장은 좀처럼 그 맛이 변하지 않는 것이기에 혹 간장맛이 변한다면 이변(異變)이거나 보이지 않는 힘의 작용이라 생각한 것 이다.예부터간장 담그는 일을 거의 신성시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고구려 고분(古墳)인 안악(安岳)3호분의 벽화에 장독대가 보이고,『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간장과 된장이 왕비를 맞을 때의 폐백품목으로 기록돼 있는 것으로 미루어 장류(醬類)를 사용한 역사는 아주 오래임을 알 수 있다.물론 오늘날 처럼 다량 생산된게 아니라 가가호호 독특한 솜씨를 발휘해 담가 먹었다.
장맛이 집안살림살이의 짜임새를 가늠하는 잣대였기 때문에 아낙네들은 장담그는 일에 온갖 정성을 쏟아붓게 마련이었지만 기본적인 격식은 격식대로 아주 까다로웠다.우선 택일을 하고 고사를 지냈으며,주인공인 주부의 금기사항도 많았다.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 장담그기 사흘 전부터는 외출을 해서도 안되었고,남편과 동침해서도 안되었다.주술적(呪術的)인 조치도 있었다.부정한 요소의 접근을 막기 위해 장독에 금줄을 치고 버선을 붙이는가 하면장 위에 고추나 숯을 띄우기도 했다 .고추나 숯을 띄운 것은 살균과 흡착의 효과도 있었으니 여기에도 우리 조상들의 슬기가 담겨있는 셈이다.
조선조 말기의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란 책은 『메주.
소금.물의 비율을 1대0.6(혹은 0.7)대2로 할 때 가장 좋은 간장맛을 낼 수 있다』고 했다.지금 다량생산되는 간장이 재래 간장맛을 내지 못하는 까닭은 이 비율이 제대 로 지켜지지않았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다.『음식 맛은 주부의 손끝에서 우러난다』는데 그 정성이 담겨있지 않은 공장 간장에서 전통의 맛을 느낄 수 없음은 당연하다.
맛을 잃게 된 것도 억울한데 사먹는 간장에서 발암물질이 검출됐다느니 아니라느니 시비가 벌어지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경실련은 유해하다는 주장이고,보건복지부는 유해한 정도는 아니라는 설명이다.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 다.힘들고 귀찮기는 하지만 집에서 간장을 담가 먹으면 고유의 맛도 되찾을수 있고,유해 시비에 휘말릴 필요도 없으니 일거양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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