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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스살롱>작곡가 백병동씨 부인 우화자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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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작곡가 백병동(白秉東.60.서울대음대교수).우화자(禹和子.57)부부 집엔 아이가 없다.아니,그보단 「아이만 둘」이 더 옳겠다.유학시절 결혼반지를 팔아 레코드판을 샀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평생 변함없는 열정을 간직한 남편이소년같다면 그를 30년 가까이 「상호불간섭의 원칙」으로 뒷바라지한 아내는 여전히 맑은 눈을 지닌 소녀같다.
『결혼반지요? 묻지 않았어요.나중에 어느 책엔가 다른 분이 쓴 글을 보니까 그랬다고 하더라고요.』 「상호불간섭의 원칙」은이런 식이다.부부 모두 고전음악을 좋아하지만 듣는 방법은 따로있다.거실 한쪽 오디오세트와 서재 한 면을 가득 메운 LP레코드.CD는 전적으로 白교수의 독점물.아내는 「행여 잘못만졌다가그 타박을 어떻게 ■ 해낼까 싶어」작은 더블데크카세트에 따로 남편에게 사다달라고 주문한 음반으로 듣곤한다.반면 서재 책상 맞은 편의 컴퓨터,작은 벽면을 빽빽이 장식한 칠보와 서예작품은아내만의 것이다.
이런 불간섭주의는 집에 돌아와서도 자기 일에 열중하다 『뭐하냐』고 물으면 『그런 거 있어』하고 답하는 남편,곡을 쓸 때면꼭 클래식 음악을 틀어놓고 혼자 작업해야 하는 습성이라 아내에게 며칠씩 『집을 비워달라』거나『언제쯤 돌아오겠 다』며 행선지도 알리지 않고 집을 나서는 남편,여고교사와 공무원으로 맞벌이하던 결혼초기 「맞벌이란 남자 주머니를 가볍게 해주기 위해 하는 것」이라며 한번도 월급을 가져오지 않았던 남편과 살아가다 보니 저절로 터득하게 된 것이다.물론 그 배후를 이해하려면 禹씨의 『믿고 사니까』 한 마디를 꼭 들어둬야 한다.
두 사람의 만남을 주선한 것은 서울대 법대에 다니면서 작곡과선배들과 친하게 지내던 禹씨의 남동생.30대초반이었던 당시에도훗날 붙은 「독일 거지」란 별명처럼 딱히 외모에 신경쓰는 일 없이 이리저리 멋대로 삐친 머리로 나타난 그의 첫인상에 禹씨는「인연이 되려고 그랬는지」 선뜻 호감을 느꼈다고 한다.
강의실 문을 걸어 잠가 지각생을 쫓는 것으로 유명한 白교수지만 한동안 두 식구만 저녁을 먹어본 적이 없었을 만큼 찾는 친구.제자가 많다.손님 대접할 기력이 전같지 않은 요즘은 세상이바빠진 탓인지 찾는 학생이 전보다 준 것이 오히 려 다행이라고.그래도 매년 白교수 휘하 「거지당」의 신입생.졸업생들에게 손수 만든 칠보작품을 선물하는 일은 거르지 않는다.두 내외의 공통취미는 매주 함께 관악산에 오르는 것.몇해전 일본 사는 형님이 『치매 예방에 좋다』며 열중하는 모습을 보고 게임기를 구입한 후론 비디오게임도 함께 즐긴다.워낙 白교수가 테트리스게임 선수라 『번번이 지고만다』며 웃는 禹씨의 어깨너머로 벽에 걸린「거지당(巨志堂)」「안빈낙도(安貧樂道)」두 휘호가 눈에 들어온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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