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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리아 모기, 휴전선 넘어 일산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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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고양시 일산동구에 사는 회사원 김모(58)씨는 최근 고열과 오한이 낫지 않아 병원을 찾았다. 감기몸살 같으면 며칠 앓으면 그만인데 이번에는 증세가 3주 이상 계속됐다. 혈액검사 결과 김씨가 어릴 적 ‘학질’로 불리던 삼일열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동남아로 여행을 다녀오거나 야외로 놀러간 적도 없다. 일산 신도시의 집과 서울 회사를 오간 게 전부다.

일산병원 감염내과 허애정 교수는 “발생 빈도가 높은 경기 북부뿐 아니라 전국에서,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말라리아 환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매년 5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는데 이 중에는 신도시 지역을 벗어난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폭염과 함께 모기의 공습이 시작됐다. 모기는 단순히 여름 밤잠을 설치게 하는 귀찮은 존재가 아니다. 말라리아·일본뇌염·뎅기열 등 치명적인 질병을 옮긴다. 특히 말라리아는 더 이상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 국가만의 고민이 아니다. 휴전선 이북에 주로 서식하던 얼룩날개모기는 최근 남한 지역까지 내려와 국내에 삼일열 말라리아를 확산시키는 주범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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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국내에서 338명이 삼일열 말라리아에 걸렸다. 1970년대 퇴치 이후 90년대 초반 100명 미만에 머물던 국내 말라리아 환자는 2000년 4142명으로 급증했다. 2004년에는 864명으로 감소했으나 최근 2년간 다시 2000명대로 늘었다. 질병관리본부는 강원·경기·인천의 22개 시·군·구를 한 해 인구 100만 명당 10명의 이상의 환자가 발생한 ‘말라리아 위험지역’으로 분류하고 있다. 연천·철원 등 휴전선 인근의 군인에게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던 말라리아는 최근 몇 년 새 인천시 강화군, 경기도 일산신도시 지역까지 남하했다. 올해에는 아파트가 밀집한 고양시 덕양구도 위험지역에 추가됐다.

질병관리본부 말라리아기생충팀 김정연 연구사는 “1910년 이전 유행하던 말라리아가 재발생한 것은 한반도의 기온, 습도, 환경 변화 등 복합적 원인 때문”이라며 “90년대 후반 북한에서 바람을 타고 남하한 얼룩날개모기가 남한 지역에서도 토착화 단계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고 설명했다.

지구온난화로 일본뇌염을 전파하는 빨간집모기의 서식지도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경남·전남 이남 지방에서 주로 관찰되던 일본뇌염 환자는 최근 춘천 등 중남부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 일본뇌염은 특별한 치료법이 없어 치사율이 최대 50%에 달한다. 감염되면 고열과 두통을 동반한 구토, 의식장애 등의 장애를 일으키며 치유되더라도 지적 이상 등 후유증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도시화는 모기의 활동 시기를 연장했다. 대형 건물 증가와 난방 확대로 도심 온도가 상승하자 빨간집모기가 겨울에도 출현하고 있다. 도시환경에 적응하는 변이종인 지하집모기는 건물 지하에서 1년 내내 활동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 질병매개곤충팀의 이희일 연구사는 “도심에 빨간집모기가 늘면서 최근 북미 지역에서 유행하고 있는 웨스트나일 바이러스 등 신종 전염병이 유입될 가능성도 늘었다”며 “공항 지역, 건물 지하 등 도심 지역의 특별 방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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