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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함께 노래 부르면 대포 쏘는 소리 같아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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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부를 곡이 얼마 없을 것. 사람이 많이 모이지 않을 것. 단원끼리 의견 충돌이 많을 것.’

3년 전 남성 성악가만으로 합창단을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 회의적이었던 사람들이 내세운 이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40여 명의 남성 성악가가 모이는 데 성공했다. 합창단의 이름은 ‘이 마에스트리(I Maestri)’. 장인(匠人)을 뜻하는 마에스트로(Maetsro)의 복수형이다.

‘이 마에스트리’는 이제 단원 57명으로 몸집을 키웠다. 국내 남성 성악가들의 최대 단체다. 30~40대, 가장 좋은 소리를 내는 연배의 성악가들이다. 이 단체의 주요 멤버 여섯 명이 남성 성악가가 모여야 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남성 성악가의 ‘유토피아’=“사실 지금 저희 나이는 가장 바빠야할 때죠. 클래식 무대가 활성화돼서 부르는 곳이 많다면 정말 왕성하게 솔로 활동을 하고 있어야할 거에요.” 테너 문익환(42·한세대 출강)씨는 성악가 삶의 이면에 대해 입을 열었다. 오페라 무대의 주역은 소수에 불과하다. ‘이 마에스트리’의 단원들은 작은 배역을 맡기에는 경력이 많은 편이다. 애매한 세대의 성악가들에게 ‘이 마에스트리’가 활동의 폭을 넓혀줬다.

동료이자 경쟁자와 함께 선다는 데에도 특별한 의미가 있다. 테너 박현재(43·서울대 교수) 씨는 “공허하고 외로운 무대인 오페라와 비교했을 때 남성 합창은 충만한 경험”이라며 “성악가에게 유토피아를 제공한다”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성악가가 너무 많아 실력을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는 시대의 고민을 ‘이 마에스트리’가 덜어준다”라고 입을 모았다.

◇대포 음향=“팔당댐의 수문을 열 때 소리를 생각하시면 돼요.” 테너 유홍준(46·서울대 출강)씨는 남성 57명의 소리를 이렇게 비유했다. 비결은 ‘다이어트를 하지 않는 것’이다. ‘이 마에스트리’ 창단을 제안한 바리톤 양재무(48·서울예고 교사) 씨는 “예쁘게, 아름답게 소리 내는 합창단은 얼마든지 있다”며 “우리는 남성이 모였을 때의 힘있는 음색으로 음향을 실험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창법에 제약을 두지 않았다. 힘이 허락하는 한 가장 웅장하게 노래하는 것이 목표다. 테너 옥상훈(45·국민대 교수) 씨는 “‘이 마에스트리’ 연습이 있는 날은 마음껏 소리 지르는 날”이라고 말했다.

힘을 보여주기 위해 편곡도 필요했다. 아리아도 합창곡으로 다시 썼다. 곡이 얼마 되지 않는 남성 합창곡의 한계를 깨려는 노력이다. 테너 박진형(41·수원대 출강) 씨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에서 ‘빈체로(이기리라)’라는 가사를 남성 성악가 57명이 함께 노래하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우렁차다”라고 소개했다.

일본 음악잡지 ‘음악의 벗’의 평론가 노리코 고노는 지난해 이들의 공연을 보고 “합창단이라기보다는 소리를 실험하는 ‘보이스 오케스트라’”라고 호평하며 이달 29일 도쿄 산토리 홀에서 공연하도록 주선했다. ‘이 마에스트리’는 이에 앞서 18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한국 관객에게 그 ‘대포 소리’를 들려준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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