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해외 한국미술품 '고향찾기' 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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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 설날을 앞두고 인사동 고미술상 K씨는 일본으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그는 설연휴도 마다하고 일본으로 날아갔다.일본 고미술상회가 밀집해있는 도쿄(東京)교바시(京橋)에 있는 한고미술 상인을 만나기 위한 출장이었다.
상담물건은 일제때 펴낸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명품으로 실려있는 조선시대 청화백자접시 한점.결과는 『조건을 좀더맞춰보자』는 다소 싱거운 것이었지만 K씨는 반은 성사된 것으로보고 귀국했다.
『시도 때도 없이 일본을 드나드니까 어느때는 한국과 일본의 시장이 마치 하나인 것같은 생각도 듭니다.』 K씨의 말처럼 근래 국내 고미술시장에 일본에서 오는 한국미술품의 양이 전에 없이 많이 늘었다.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에서도 상당수 한국미술품들이 들어오고 있다.국내 고미술시장이 길게는 3~4년째 심한불황속에 놓인 것과는 크게 대 조적인 움직임이다.
언뜻 봐서 불황탓에 국내시장에선 매물의 유통 속도가 느려지고매물 자체도 부족해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맞물려 있는 것처럼 보인다.실제 인사동 고미술상 L씨는 지난해 가을 『처음 일본을 다녀왔다』며 『국내에서 물건찾 기가 쉽지 않아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을 자주 드나드는 상인들의 말에 따르면 한국미술품이 들어오는 것과 국내 불황은 별개라고 말한다.
들어올만한 여건이 안팎으로 조성돼 있다는 지적이다.우선 91년 뉴욕 소더비 경매에서 고려불화 한점이 1백60만달러(약 12억8천만원)에 낙찰된 것이 기폭제가 돼 그후 한국미술품 값이갑자기 치솟았는데 이에 따라 국제시장에 해외 한 국미술품들이 전에 없이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그리고 여기에맞춰 국내 컬렉터들의 경제력도 이들을 사들일만큼 충분하다는 설명이다. 가나화랑 이호재(李皓宰)사장은 이런 조건을 시장가격차이 때문이라고 말한다.
『소더비나 크리스티등 경매시장 가격이 너무 올랐다는 느낌이 없지 않지만 아직도 일부 품목에서는 국내 미술품 가격이 강세다.이런 가격공백을 따라 물건이 흘러들어 온다.』 말하자면 불화.불경등 불교 미술품이나 민속품.목기는 국제시장 가격이 더 높은 편이고 도자기.일부 회화는 한국이 더 높다는 것이다.어쨌든지난해 국내에 들어온 해외 한국미술품은 도자기만 1천점에서 1천5백여점을 헤아린다.
***작년 도자기만 1,500점 그 가운데 완전한 형태로는 전세계에 단 두점이 전하는 것(한점은 일본에 있음)중 하나인 『청자상감화금쌍학당초문(靑瓷 象嵌畵金雙鶴唐草文)대접』을 비롯해40억원 넘게 거래된 『청자운학문매병(靑瓷雲鶴文梅甁)』,영조대왕의 친필 화제(畵 題)가 붙은 김두량(金斗樑)의 개그림,현재심사정(玄齋 沈師正)이 손가락끝에 먹물을 묻혀 그린 『지두선인도(指頭仙人圖)』,금(金)물로 불경을 베낀 『백지금니범망경(白紙金泥梵網經)』등은 국보.보물급에 필적할만한 물건들이다.
이같은 한국미술품이 가장 많이 들어오는 곳으로는 당연히 일본이 으뜸이다.그러나 3~4년전부터는 미국.영국.네덜란드.중국도주요 거래 국가로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 해외 한국미술품을 주로 다루는 고미술상은 해당국의 상인.교포등을 에이전트로 두고 한국미술품에 관한 정보를 얻고 있다.이들을 통해 얻는 정보는 독일 소도시에서 열리는 소규모 경매 사정에서부터 일제시대 한국에서 고급관리를 지 낸 일본인 후손들이 현재 어디에 살고 있으며,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다는 것까지 광범위하다.
그러나 해외 한국고미술품 유입 붐에 따른 부작용이 전혀 없는것도 아니다.
지난해 11월 하순 시코쿠(四國)지방의 작은 섬에 있는 보성사(寶性寺)란 절에 한국인 2인조 강도가 침입해 이 절에 있는『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한점을 훔치려다 들켜 주지에게 상해를입히고 체포된 사건도 있었다.
***수집商 정보수집 경쟁 현재 자주 외국을 드나들며 한국미술품을 들여오는 상인의 수는 대략 30~40명선.이들은 대금결제등 국내와 외국시장의 상관행이 달라 『일이 쉽지만은 않다』고한다.근래 들어서는 외국미술관.박물관들이 앞다투어 한국관을 설치하면서 물건 을 구입하고 있어 정보와 자금이 풍부한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도 큰 부담이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애국심인지는 몰라도 좋은 물건을 국내에 가져오게되면 말할수 없이 가슴이 뿌듯하다』며 해외의 한국미술품을 가져오는 일이 단순한 장사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수년전부터 일본에서 주요한 미술품들을 중계해온 인사동 미술컨설턴트 S씨는 오는 5월께 그동안 들여온 우리 미술품들을 일반에 공개,소개하기 위해 「되돌아온 한국미술명품전」(가칭)을 개최할 계획을 갖고 있기도 하다.
아무튼 해외에서의 한국미술품 유입현상은 국내와 해외시장간 가격 격차가 줄어드는,최소한 몇년간은 상당한 호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윤철규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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