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리날레 리포트-절망서 희망으로 솟구친 "청년 전태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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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국내에서 각종 영화상을 휩쓴 박광수감독의 『아름다운 청년,전태일』이 한국대표로 참가한 제46회 베를린영화제(베를리날레)가27일까지 계속된다.중앙일보는 국내 영화팬들에게 베를리날레의 이모저모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이남 기자에 이어 남재일 기자를 현지에 특파,생생한 소식을 전한다.
[편집자註] 제46회 베를린 영화제 본선 경쟁부문에 출품된 『아름다운 청년,전태일』이 21일 오전 9시(현지시간) 초 팔라스트 극장에서의 기자시사회를 시작으로 이틀간 모두 4회의 시사회를 가졌다.결과는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반전」으로 요약할 수 있다.
21일 오전 9시 간밤의 폭설로 교통이 극도로 불편한 상태에서 열린 첫 기자시사회에서 『아름다운…』은 객석의 절반이 채 안되는 4백여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이 관객수는 『닉슨』『황혼에서 여명으로』『겟 쇼티』등 할리우드 영화의 절반정도이며 앞서 시사회를 가진 대만감독 양더창(楊德昌)의 『마종』이 동원한 관객수보다 적은 숫자였다.
여기에다 시사회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도 불과 50여명의 외국기자들이 참석해 회견장이 썰렁할 정도였다.한마디로 불안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21일 오후 5시 첫 일반시사회부터 상황은 달라졌다.이날 시사회에서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으며 막을 내리고도 많은 관객들이 자리를 뜨지 않고 후원인들의 명단이 길게 이어지는 장면을 끝까지 지켜봤다.다 음날계속된 두차례의 시사회에서도 관객들의 성원과 반응은 똑같았다.
극장에서 만난 독일기자 루디거 톰착(36)은 『사실 노동운동같이 서구에서 오래전에 용도폐기된 소재로 감동을 끌어내기는 어렵다』면서 『그러나 노동자의 삶을 인간의 보편적인 문제와 연결시킨 점이 탁월해 인상적이었다』고 관람소감을 밝 혔다.
현지 언론과 영화제에 참석한 평론가들의 평가도 희망적이다.영화제 관련기사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베를린의 유력지 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지는 같은날 시사회를 가진 『아름다운…』『나의남자』『황혼에서 여명까지』 세편중 『아름다운…』 을 가장 비중있게 다뤘다.
『나의 남자』가 프랑스의 거장 베르트랑 블리예 감독의 작품이고 『황혼…』가 로버트 로드리게스의 영화인 점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대접이다.또 베를리너 차이퉁지도 영화제 관련기사를 게재하면서 『아름다운…』의 기사와 사진을 톱으로 실었고 독일현지 TV방송 두곳과 영화잡지들도 박광수 감독을 개별 인터뷰하기도 했다. 평론가들의 반응도 『마종』보다 한결 낫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아시아 영화통인 토니 레인스는 『컬러와 흑백을 교차시킨 영상이 아름답고 서사와 영상의 관련성도 밀도가 있다』며 호평.
『마종』은 아시아 영화 1호로 선보였으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현지에서 아시아 영화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2호로 선보인 『아름다운…』은 이 영향으로 기자시사회와 회견에서 손해를 본 셈이다.
한편 기자회견에서는 『왜 모금을 해서 영화를 만들었나』『왜 하필이면 전태일이란 인물을 선택했느냐』『전태일의 죽음뒤에 어떤현상이 벌어졌나』는 등의 주로 정치적 상황과 관련된 질문이 쏟아졌다. 그중에는 『박정희를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수 있느냐』는 질문도 있어 한국의 현재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인상을 받았다. 박감독은 『아름다운…』에 대해 『노동운동 영화도,전기영화도 아니며 점점 물질적 풍요속에서 메말라 가는 현재 한국인의 삶을 되돌아보기 위해 과거 정신이 살아 있었던 시대를 소재로 삼았다』는 요지의 답변을 했다.
베를린=남재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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