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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배우러 독일 갔다 ‘이콘’에 매료됐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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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김형부씨가 러시아 이콘을 모사한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에선 드문 이콘(icon) 화가 김형부(60)씨는 경기도 화성시에 갤러리를 열어 이콘을 상설 전시하고 있다. 동방정교의 성화를 뜻하는 이콘은 성서 장면 등을 담은 종교미술이다. 특히, 동서문명을 아우르며 1000년을 번영했던 중세 비잔틴 제국은 이콘을 중심으로 찬란한 미술의 꽃을 피웠다.

이콘은 주로 수도원을 중심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래서 김씨는 이콘 화가가 되기 위해 먼길을 돌아와야 했다. 원래 그는 경영학도였다.

“제가 제부도 근처에서 자랐는데, 그림을 그리고 싶었지만 시골 출신이 미대 가기가 쉽지 않았잖아요.”

1982년 경영학 전공으로 독일 쾰른대 유학길에 올랐다가 진로를 바꾸게 됐다. 이 대학 미술사 교수로 동방예술 권위자인 닛센 신부를 만난 것이다. 그리스 정교회 명예주교이기도 한 인물이다. 당시 이콘을 처음 본 김씨는 “이런 그림이 다 있나”싶을 만큼 낯설었다고 한다.

“인물 비례도 안 맞지, 색깔은 울긋불긋하지. 미켈란젤로나 라파엘로도 성화를 그렸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잖아요. 서구식 미술에만 익숙한 눈이 놀란 거에요.”

하지만 낯설음은 이내 묘한 매력이 됐다.

85년부터 닛센 신부로부터 이콘 이론을 배웠고, 92년 경영학 석사를 마치고는 아예 화가로 전업했다. 형태와 색깔 등 표현방법이 정형화된 데다 ‘창작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다’는 게 이콘이지만 제작 과정은 굉장히 까다롭다. 먼저, 작품을 그릴 나무판에 석회를 바르고 말리고를 7번 반복한다. 2mm 두께로 석회판이 형성되면 사포로 갈아내고 금박을 입힌 뒤 그 위에 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을 따라 그림 배경에 24K 금박을 붙이는데 이 또한 만만하지 않다. “갤러리 그림 전체에 사용한 금을 다 긁어도 1g이 채 안 된다”는 그의 설명처럼 바스러질까 손으로는 만질 수도 없이 얇은 금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전기를 이용해 금박을 들어올리고 그림에 입힌다. 그리고 계란과 안료를 섞은 물감으로 채색한다.

“하루종일 작업해도 작품 한 점 완성에 한 달이 꼬박 걸려요. 다작이 어렵다 보니 아직 갤러리에도 30점 정도밖에 없네요.”

그는 독일에서 작업하면서 97년 명동성당에서 국내 첫 전시를 열었다. 2002년 이콘 갤러리를 짓기 시작하면서 귀국했다.

“돌아오면 정착하려고 했던 고향땅이에요. 저뿐 아니라 제 아이들까지 독일에서 학비 안 내고 오래 공부했는데, 그렇게 제가 받은 것들을 돌려줄 방법을 찾다가 갤러리를 열게 됐어요. 낯선 종교미술이지만 불교의 탱화처럼 생각하고 일반인들도 감상하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

하지만 직접 터를 닦아 지었다는 비잔틴 양식의 아담한 2층 건물의 내부는 벽에 걸린 그림 말고는 을씨년스러워 보였다. 2004년 10월 건물이 완공되자마자 화성시로부터 신도시 개발지구에 포함됐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완공 딱 열흘 만에 수용 발표가 났어요. 갤러리를 개관하고 창에 스테인드글라스도 끼우고, 실내 인테리어도 하나씩 보강할 생각이었는데, 철거하라는 말을 들었으니 손을 놓게 됐어요.”

3년째 어정쩡한 상태로 갤러리 운영과 작업을 병행하면서 화성시와 토지공사 측에 탄원도 해 봤지만 똑 부러지는 답을 얻지 못했다.

“만약 갤러리가 철거된다고 해도 다시는 못 지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는 건물 짓기가 너무 어려워서…”

그는 요즘 결과만 기다리며 대학 강의와 올 가을 전시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다시 토공 쪽에 편지를 보내야하는데…”라고 말 끝을 흐리는 그는 지방의 문화공간을 위한 배려 부족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사재를 털어서 작은 도시에 문화공간을 만들었는데, 개발 논리에 밀려서 생기자마자 사라져야하는 게 안타까워요. 경제적으로 별 이익은 없어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문화적 토양의 하나로 보탬이 되지 않을까요.”

글·사진=홍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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