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남’에서 ‘메신저녀’까지…‘직장 무개념’ 어디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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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가 무개념’의 전설로 전해오는 얘기의 주인공은 한 외국계 회사에 근무한다는 ‘영어남’이다. 2008년 대학을 졸업 후 신입사원 교육을 받다가 ‘외국계 회사인데 강의를 영어로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인사담당 임원에게 메일을 보내자 회사가 발칵 뒤집혀 졌다. 담당 임원은 실무자들에게 영어로 강의할 것을 지시했다. 교육을 담당하던 실무진 중 상당수가 영어 강의를 기피해 인사팀에서 연사를 초빙하는데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이 회사에 다니는 이모(29)씨는 “이야기를 듣는 내가 다 식은땀이 났다”고 말했다.

해마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각 회사는 ‘개념 논란’으로 시끌벅적하다. ‘신입사원이 감히’라는 등의 수식어는 물론이고, 이들의 만행(?)이 널리 회자되기까지 한다. ‘개념이 없다’는 말은 어딜 가나 통하는 동서고금의 잔소리다.

대표적인 무개념 사례로는 ‘메신저’가 손꼽힌다. 업무 시간에 메신저를 틀어놓고 ‘잡담’을 늘어 놓는 것은 선배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에 딱 맞다. 최태선(23)씨는 “메신저 창을 작게 띄워 친구와 대화를 하는데 과장이 어떻게 알고 와서는 불호령을 내린 적이 있다”고 말했다.

몇몇 메신저에서 제공하는 ‘투명창 기능’을 이용해 걸리지 않을거라고 생각하면 오해다. 김아영(24)씨는 “문서작성과 메신저는 ‘타자 소리’가 다르다”며 “안 걸릴 줄 알고 메신저에 몰두하는 동료들을 보면 가끔 안쓰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키득거리면서 자판을 두드리는데 누가 모르겠냐”고 반문했다.

선후배 간에 격의가 없어지면서, 예의와 관련한 무개념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오광민(27)씨도 비슷한 경험이 있다. 회식자리에서 ‘2차’로 노래방에 갔다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선배에게 반말을 했던 것. 그는 “나이도 같고 평소 친구처럼 지냈던 터라 무심결에 반말이 나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배는 정색을 하며 불호령을 내렸고, 이 ‘사건’은 해당 팀에 퍼져 오씨는 한 동안 ‘예의 없는 놈’으로 찍혔다.

회의시간에 머리를 만지거나 사무실에서 화장을 고치는 등 ‘너무 편해보이는 행동’도 무개념으로 손가락질 받기 쉽다. 한진수(27)씨는 “아침에 꼭 사무실에서 화장을 하는 후배들을 보면 어이가 없다”며 “마치 자기 집에 온 양 행동하면 정작 본인에게 손해”라고 말했다. 그는 “회의시간에 머리를 만지거나 친구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금물”이라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이들 회사원들은 회식 때마다 사라지는 것, 퇴근 30분 전부터 일을 정리하기 시작해 정시에‘칼퇴근’하는 것, 회사 프린터로 동창회 자료 만드는 것 등을 ‘무개념’행위로 꼽았다.

그렇다면 무개념 신입사원에게 ‘개념을 탑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직장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시간이 약’이라고 말한다. 번번이 ‘깨지고 당하다보면’ 조직에서의 생활 코드를 알 수 있다는 것. 오택기(27)씨는 “천방지축인 신입들도 선배들에게 하나씩 지적받다보면 1년 뒤엔 ‘개념 사원’으로 탈바꿈한다”며 “선배들이 화를 참고 지도해 주는 것이 방법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옛날처럼 무조건 윽박지르고 혼내는 경우 오히려 반감이 생길 수 있다. 강세원(28)씨는 “화가 난다고 일거리를 많이 주는 선배들도 많지만, 그럴 땐 안 하면 그만”이라며 “오히려 부장, 차장 등 간부급 선배가 타이르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유용수 네모파트너스 인사 컨설턴트는 “‘무개념 행동’은 자유분방하게 자라온 대학생들이 직장이라는 새로운 조직에 편입되면서 겪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유씨는 또 “해외 경험이 많은 취업자들이 늘면서 ‘한국식 조직문화’가 변화하는 조짐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현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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