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위기의식도, 위기관리 능력도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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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의 전후 사정은 알면 알수록 한심하다. 이럴 정도로 대책도 없이, 그렇게 위험한 곳에, 어떻게 수백만 명의 관광객을 보낼 수 있었을까. 정부와 현대를 믿어온 국민 입장에선 끔찍하다.

기본적으로 참사는 정부와 현대의 위기의식 부재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의 일방적인 조치로 우리 당국자는 북한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됐다. 수백만의 국민이 들락거리는 곳에 책임 있는 대표자가 없다. 정부는 자국민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하는 상황을 방치해온 셈이다. 그 바람에 사건 발생 이후에도 정부는 아무런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우리 정부의 연락조차 받지 않고 있다.

정부의 안이한 사고는 사건 발생 당일에도 명백히 드러났다. 정부에 신고가 접수되고 대통령이 사건 보고를 받기까지 2시간이나 걸렸다. 자국민이 적성국 군인의 총격을 받아 피살된 사건만큼 중대한 사건이 어디 있겠는가.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됐어야 맞다. 대통령은 이런 심대한 사안을 보고받고서도 50분 뒤 국회 연설에서 북한에 대한 유화정책을 천명했다. “예정대로 연설하겠다”는 대통령이나 “그래선 안 된다”고 말리지 못한 참모들이나 모두 판단력에 문제가 많다. 결과적으로 국민의 생명을 경시했다는 비난은 비난대로 받고, 북한으로부터는 ‘(대화 제안은) 가소로운 잔꾀’라는 조롱까지 받게 됐다.

금강산에서 정부를 대신해야 할 현대 역시 무책임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현대는 관광객들에게 안전교육을 제대로 시키지 않았다. 관광객의 출입을 막는 펜스에 경고 표시가 있다고 하는데 관광객들은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바다 쪽엔 아예 펜스조차 없이 모래 언덕만 있다. 무심히 넘을 수 있는 상황이다. 한 발짝이면 사지로 들어서는 위험한 길목이 그렇게 허술하게 방치돼 왔다. 사건이 터진 이후에도 현대는 관광객을 금강산으로 보냈다. 아무리 영리행위라지만 관광객을 사지로 몰아넣는 무감각이 놀랍다.

대통령은 뒤늦게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며 “위기대응 시스템의 개선”을 지시했다. 그러자 관계자들이 무슨 긴급 대책이니 고위 당정이니 부산을 떨고 있다.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들은 국민의 생명을 천금같이 여기는 공복의식부터 추슬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