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구미 ㈜코오롱 파이버연구소엔 ‘특급 보안구역’이 있다. 외부인은 물론 연구소 사람들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다. 현재 미국이 석권하고 있는 나노섬유를 연구하는 곳이다. 노환권 연구소장은 “일반 섬유의 굵기가 지구만 하다면 나노섬유는 테니스공 정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워낙 촘촘해 오염물질 같은 입자가 외부에서 침입하지 못하도록 막는 데 주로 쓰인다. 생화학 방호복, 붕대, 배터리 전해질 등 활용 범위가 무수하다고 한다. 2005년 연구에 착수해 이제 기초기술을 확보한 상태다. 노 소장은 “연말께 우선 의류에 적용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내 섬유업계가 기존의 의류용 직물에서 벗어나 첨단 산업용 섬유 쪽으로 체질을 바꾸고 있는 현장이다. 산업용 섬유는 공업·농업·인테리어용 등 비의류 분야에 사용하는 섬유를 말한다. 일본은 비행기 동체를 섬유로 만드는 탄소섬유 기술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비해 국내 산업용 섬유는 아직은 전체 섬유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 정도다. 기술 수준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70%에 불과하다. 주로 자동차용 섬유와 일회용 부직포, 인테리어용품 위주다. 고부가 산업용 섬유소재와 부품은 거의 수입에 의존한다.
개발된 소재를 활용한 응용상품으로 새 시장을 개척하기도 한다. 중소기업인 웰크론은 극세사 클리너 세계 1위에 올랐다. 극세사는 폴리에스테르를 사람 머리카락 굵기의 100분의 1로 아주 얇게 만든 실이다. 옷을 만드는 데 주로 쓰이던 극세사를 청소용품과 목욕용품으로 활용하며 새로운 마켓을 열어가고 있다. 반도체·LCD 제조에 사용하는 클린룸용 와이퍼를 만들어 LG디스플레이를 비롯해 대만·일본 업체에 납품하기도 한다. 지난해 수출은 28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일본을 넘어라= 일본은 업계 구조조정 끝에 새로운 성장 발판을 마련했다. 그 발판은 고기능성 의류섬유와 첨단 섬유소재, 특수산업용 섬유였다. 변성원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본부장은 “도레이는 30년간 수익도 없는 탄소섬유 개발에 힘을 쏟은 결과 원천기술과 새로운 시장을 확보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한국 섬유가 3년째 수출 감소를 보이고 있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일본은 상승세다. 한국은 미국 시장에서 2005년 대비 지난해 수출액이 8% 정도 줄었지만 일본은 15%나 늘었다. 유럽 시장에서는 같은 기간 한국이 7% 줄어드는 동안 일본은 9% 성장했다.
최근엔 중국도 고부가 섬유산업을 강조하며, 화섬업계를 정비하고 있다. 한국이 산업용 섬유 개발에 좀 더 고삐를 죄어야 하는 이유다. 박훈 산업연구원 팀장은 “섬유산업은 기존의 박리다매형에서 기술이 좌우하는 시장으로 가고 있다”며 “독자적인 첨단 소재 등 기술개발 능력과 시장 창출 역량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선희·이철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