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백사장 만나는 부분엔 차단시설 없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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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12일 북한은 금강산 여성 관광객 피살 사건에 대해 “이번 사고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측에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명승지종합개발지도국 대변인은 12일 담화에서 유감을 표명한 뒤 우리 측이 요구하는 현장조사에 대해 “허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피살사건 발생 뒤 북측이 하루 만에 내놓은 첫 번째 공식 반응이다.

우리 정부의 금강산 관광 잠정 중단조치에 대해선 “우리에 대한 도전이고 참을 수 없는 모독”이라며 “남측이 올바로 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세울 때까지 남측 관광객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은 이번 사고 원인을 ‘11일 새벽 4시50분쯤 박왕자(53ㆍ서울 상계동)씨가 군사통제구역을 침범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북측은 “공포탄까지 쏘면서 (박씨에게)거듭 서라고 했으나 계속 도망쳐 사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박씨가 쓰러진 상황을 목격했다는 이인복(23ㆍ경북대 사학과 2년)씨는 “(박씨가 걸어간) 그쪽(펜스 북쪽)이 통행 금지된 곳이거나 북한군 초소가 있는지 잘 몰라 큰 문제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2008 금강산 대학생 생명평화캠프’ 참석차 현지에 갔다 일출을 보기 위해 사건 당시 금강산 해수욕장 백사장에 앉아 있었다. 이씨는 “바닷가 부근에는 펜스 대신 길이 6m, 높이 1.5m의 모래 언덕이 있었을 뿐 백사장과 바다의 경계 부분에는 차단 시설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의 증언은 이어진다. “펜스 너머 북쪽 해안의 산 쪽에서 ‘탕’ 하는 총소리가 났다. 5∼10초쯤 지나 다시 ‘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총격 전후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악’ 하는 여성의 비명이 들렸다.” 이는 북측이 주장하는 경고 사격이 없었음을 말해주는 증언이다. 피살된 박씨의 시신에선 두 발의 총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 정부는 현장조사를 계속 요구하기로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측의 사과 요구는 터무니없는 것”이라며 “현장조사를 하겠다는 기존 방침에는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이인복씨는 “50대 여성이 내가 앉아 있던 곳을 지나가고 한참 있다가 총소리가 난 것 같다”며 “이 사이에 10분이 지났는지 20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사진을 좀 더 찍던 이씨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 펜스의 해안 끝 부분으로 다가갔다.

바닷가 부근에는 펜스 대신 길이 6m, 높이 1.5m 정도의 모래 언덕이 있고, 백사장과 바다의 경계 부분에는 차단 시설이 없었다고 했다. 펜스 옆에 실개천이 있었지만 사고 현장까지 갈 수 있을 것같이 보였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펜스를 넘지 말아야 한다는 규정을 모를 경우 누구나 쉽게 넘어 갈 수 있어 보였다”고 설명했다.

이씨가 모래 언덕 위에 올라서자 북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에 쓰러져 있는 여성이 보였다. 이어 북한 군인 3명이 여성이 쓰러진 곳의 북서 방향 산 쪽에서 뛰어오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총을 맞고 엎드려 있는 여성을 군인들이 손으로 흔들어 깨우는 등 살아 있는지 확인했다”며 “북한 군인이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서둘러 숙소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현장에서 사람이 총을 맞고 숨졌다는 사실은 알았지만 북한 주민끼리의 문제로 알았다”며 “우리 관광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펜스를 넘으면 안 된다는 설명을 듣거나 안내판·경고판 등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좀 더 가까이 가보고 싶었으나 북한군이 있어 (펜스를) 넘어가지 못하고 모래 언덕 위에서 지켜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는 또 “총성이 들리기 전 북한 고성읍 마을 쪽에서 선전방송 같은 확성기 소리가 들렸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아듣기 어려웠다”고 했다.

그는 박씨가 자신의 앞을 걸어 펜스 쪽으로 간 시간과 총격이 들린 때를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캠프에서 장기자랑 등 행사를 마친 오후 11시부터 백사장을 산책하며 밤을 새웠고 시계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9∼11일 금강산에서 열린 대학생 생명평화캠프의 일원이었다. 대학생 40명이 금강산에 머물며 ^통일대토론회 ^북한 친구에게 편지 보내기 ^금강산 답사 등을 하는 행사였다. 일행은 사건 전날 펜스와 인접한 곳에 설치된 해변 야영장 숙소(현대 측에서 설치한 야영텐트)에서 묵었다. 하지만 이씨는 일출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대열에서 빠져나와 밤을 새웠다고 한다. 이씨의 목격 사실은 행사 인솔자인 대구통일교육협의회의 김두현(40) 사무국장이 확인했다. 김 국장은 “숙소에 있던 관광객 중 일부가 총성을 들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홍권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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