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울리는 ‘양치기 소년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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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호 28면

거대한 폭풍이 증시를 휩쓸었다. 투자자들은 난파한 배를 뒤로 하고 구명정에 겨우 몸을 실었다. 물결은 잠잠해졌지만 언제 다시 파도가 몰아닥칠지 불안하기만 하다.

남은 식량과 연료를 챙겨 본다. 이것마저 고갈되면 망망대해에서 표류하다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 각오를 단단히 다져야 한다. 고난의 항해가 얼마나 오래갈지 냉철히 판단하고, 남은 식량과 연료를 나눠 써야 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난파선에서 옮겨온 승무원들은 여전히 상황을 낙관한다. 목적지가 멀지 않았으니 배의 속도를 내고 밥도 배불리 먹자고 한다. 과연 이들의 말을 믿어야 할까. 이제껏 그들을 믿고 따르다 이 꼴이 됐는데 말이다. 왠지 이젠 ‘양치기 소년들’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주 주가가 급락하자 증권업협회는 업계의 내로라하는 투자 분석가들을 모아 시황 간담회를 했다. 이 자리 참석자들은 지금이 증시의 바닥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한다. 코스피지수의 바닥권을 1500 선으로 제시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이들은 국내 증시가 이르면 이달 말, 늦어도 4분기 중에는 상승 흐름으로 복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시계추를 한 달 전인 6월 중순으로 돌려 보자. 당시 코스피지수가 1800선을 맴도는 상황에서 대부분 증권사는 하반기 증시가 밝다며 주식 매수나 펀드 가입에 무리가 없는 가격대라고 입을 모았다. 설사 조정을 받아도 1700 선을 밑도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연말 지수는 2200∼2300으로 제시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당시 이들의 말을 믿고 투자한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됐는가. 그런데 이제 와서 또 지금이 바닥이라고 한다.

지난해 10월 말 글로벌 증시가 피크를 친 이후 계속 그랬다. 해외 증시가 속절없이 미끄러지는 상황에서도 줄기차게 “신흥시장의 성장성을 주목하자”며 중국·인도 등의 펀드를 강추했다. 그래 놓고는 이제 와서 “길게 봐서 그렇다는 얘기였다”고 슬그머니 발을 뺀다.

금융의 역사를 보면 언제나 ‘쏠림’이 화근이었다. 시장의 정점에선 돈의 쏠림이 극에 달하고 전문가들은 다양한 이론과 데이터를 동원해 이를 부추긴다. 비관론이라곤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가을 은행과 증권사 창구는 30분 이상 줄을 서 기다린 뒤 무작정 “미래에셋 주세요”하는 투자자들로 아우성이었다.

지금은 어떤가. ‘역쏠림’의 시기다. 글로벌 경제의 위기 상황에 놀란 투자자들이 주식을 팔고 있다. 하지만 지금 사도 된다는 낙관론이 여전한 것을 보면 아직 바닥은 먼 것 같다. 언제나 대세 하락의 큰 바닥에서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비관론이 팽배했다. 극도의 공포가 투자자들의 마음을 지배했다. 잔인한 얘기로 들리겠지만 그런 게 시장이다.

우리 시대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중요한 투자 판단을 내릴 때 누구의 얘기도, 누구의 분석도 외면한다고 한다. 오로지 혼자 공부하며 거울 속의 자신과 대화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인간이기 때문에 빠질 수밖에 없는 군중심리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한 극단적 처방이다.

앞으로도 일반투자자들을 놀라게 할 악재는 계속될 것이다. 글로벌 경제가 누린 10년 호황 끝의 불황이 그렇게 쉽게 마무리될 리 없다. 분위기에 휩쓸려선 안 된다. 남은 현금을 보석처럼 아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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