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는 죽어서 '정자'를 남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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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우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 그리고 잘하면 새끼도 남긴다'.

멸종된 것으로 알려졌다가 26년 만에 사체로 발견된 야생 수컷 여우의 사체에서 살아있는 정자가 채취됐다. 이에 따라 체외수정을 통해 죽은 여우의 새끼를 얻을 수도 있게 됐다.

국립환경연구원은 지난달 23일 강원도 양구에서 발견된 여우의 사체에서 정액 1㏄를 채취해 분석한 결과 정자의 5% 정도가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12일 밝혔다. 연구원은 여우의 정액을 냉동보관 중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체외수정 기술을 이용해 우리나라 토종 여우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서울대공원의 북한산 여우를 활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연구원은 또 여우 사체에서 유전자(미토콘드리아 DNA)를 채취, 외국에서 서식하는 같은 종(種)과의 유전자 특성을 비교.분석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연구원은 여우의 사인(死因)을 규명하는 데는 실패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환경연구원과 서울대 수의과대학.국립수의과학검역원 등이 사체를 부검했으나 구체적인 사인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이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도 추가 조사를 포기함에 따라 여우의 사인은 영구 미제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국과수는 사망 이후 시일이 너무 경과해 독극물에 의한 사망 여부를 가리기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연구원 측에 전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연구원은 사인 규명을 위한 추가조사는 하지 않기로 했다. 또 사체의 가죽과 뼈는 박제와 골격 표본으로 제작해 앞으로 건립될 국립생물자원관에 전시할 예정이다.

한편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여우 세 마리가 한꺼번에 목격되는 등 사체 발견 인근 지역에서 1996년 이후 모두 일곱 차례나 여우가 목격되거나 여우 울음소리가 들렸다는 주민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환경부는 여우의 번식기인 다음달 여우 서식실태에 대한 정밀조사를 한다.

강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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