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는살아있다>영화배우 리버 피닉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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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12면

TV영화 번역을 하다 보면 국내 미개봉작이거나 국내 흥행에 실패해 관심을 끌지 못했던 영화들,그리고 흘러간 영화들 중에서뜻밖의 좋은 작품들을 만나게 될 때가 있다.그중 하나가 『스탠드 바이 미』(Stand by Me)라는 영화다 .
나는 리버 피닉스라는 배우를 알지 못했다.
그 영화의 번역을 처음 의뢰받았을 때,그리고 대충 시사를 했을 때도 조무래기 아이들이 나와 담배를 피우고(이 부분은 심의에서 잘렸다)말이 많고(말이 많으면 번역하는 입장에서는 반갑지않다)해서 문제아들을 다룬 쓸데 없는 영화로 생 각했다.그때 나는 이사를 하느라 짐을 싸기에 바빴으므로 편성 시간을 맞추기위해 누구와 나눠 할 수 없을까,동료들에게 사정해볼 궁리까지 했다.그런데 번역을 시작하면서 영화 속으로 들어가보니 그게 아니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주인공인 네댓명의 문제아중 하나인 피닉스의 연기였다.
아니,그것은 연기가 아니었다.그 자신이었다.아이의 표정이 어쩌면 그럴 수 있을까.손댈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버린 가정에서,어른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절망적인 상황에서 문제아가 돼버린 그 아이에게 연민을 느낀 것 외에도 어스름한 저녁 무렵 그 상황에서 벗어날 계획을 친구에게 담담하게 얘기하던 표정을 아직도잊을 수 없다.
후에 나는 미국잡지에서 우연히 피닉스가 『스탠드 바이 미』에서 아역으로 출연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선천적인 연기자라고 놀라워했다는 구절을 읽고 그 아이가 바로 피닉스일 거라고 짐작만했다.그러다 딸 아이가 친구에게서 생일 선물로 받은 벽걸이용 큰 천에 인쇄된,이제는 청년이 된 그의 얼굴을 보고서야 그가 그 어른스럽던,그래서 더 마음 아프게 했던 그 아이였음을 확인했다. 그 영화에서도 그는 일찍 죽은 것으로,어른이 된 친구의독백을 통해 처리된다.실제로 그가 요절했다는 사실도 왠지 그의어렸을 적 세상을 일찍이 초탈한 듯한 그 표정과 무관하지 않은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딸의 방에 걸려있던 그의 사진을 멀찌감치 장롱속맨 뒤쪽 구석에 깊이 넣어놓았다.그의 눈에 서린 혼이 아직도 살아서 보는 사람을 사로잡을 것같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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