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쉿, 동물원에 레지스탕스가 숨어있다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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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미친 별 아래 집
다이앤 애커먼 지음, 강혜정 옮김
미래인, 404쪽, 1만5000원

인간과 동물에 대한 사랑이 넘쳤던 부부가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폴란드 바르샤바 동물원장이었던 얀과 그의 부인 안토니나다. 나치의 침공에 동물원 동물들이 죽고 살아남은 것들은 독일에 빼앗겼다. 동물원은 나치에 돼지고기를 공급하는 돼지 우리와 모피 제조용 동물 사육장으로 바뀌었다. 동물원 안에는 독일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들은 실의에 빠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기회를 활용해 사람들을 구했다. 돼지우리에 줄 먹이를 받는다는 핑계를 대고 유대인 게토를 드나들며 유대인들을 빼왔다. 자신들이 사는 빌라, 동물 우리, 창고 등에 폴란드 레지스탕스와 300여명의 유대인을 숨겨 대피시켰다. 집이나 어미를 잃은 야생동물들도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생활했다. 언뜻 ‘폴란드판 쉰들러의 리스트’가 연상되지만 그렇게 부르기엔 아쉽다. 안토니나와 얀 뿐만 아니라 나치에 적극적 또는 소극적으로 저항하고 유태인들을 도왔던 수많은 폴란드 인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동물원에서 숨어 지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름 대신 동물 이름으로 불렸고, 애완 동물은 사람 이름으로 불렸다. 한국어 제목 ‘미친 별 아래 집’은 레지스탕스와 유대인들이 동물원을 불렀던 암호명이다. 괴상한 사람들과 동물들이 뒤범벅이 되어 요행히 들키지 않고 살아가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이 책은 또한 폴란드가 자랑하는 유럽 유일의 원시림 비아워비에자 숲을 비롯한 자연과 동물들에 바치는 헌정사이기도 하다. 나치는 유대인 절멸에 엄청난 공을 들이면서도 한편으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에 맞는 멸종위기 동물과 서식지를 보호하고 멸종된 혈통을 복원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현재 비아워비에자 숲에서 뛰노는 유럽 황소 오록스와 야생말의 일종인 타팬말이 실은 한때 사라진 종이었으며 나치의 노력으로 복원됐다는 사실은 기이한 아이러니다.

책 곳곳에 배어 있는 폴란드 풍습과 요리, 문화는 덤이다. 폴란드인들이 자주 먹는 빵 울리차 피에카르스카에서 술, 일상 생활에 쓰는 전등갓까지 소소한 디테일은 저자가 직접 가서 취재한 것들이다. 여기에 안토니나의 일기·회고록·메모 등을 참고한 꼼꼼한 자료 조사까지 더해져 역사의 한 페이지속으로 묻힐 뻔한 논픽션을 그 자리에서 직접 본 듯 생생하게 묘사해냈다. 원제 『The Zookeeper’s Wife』.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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