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인터넷 정보 바다에 휩쓸리지 말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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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이성의 섬』을 쓴 독일계 요제프 바이첸바움은 ‘정보’라는 단어를 신중히 사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이성의 힘으로 통찰하지 않은 인터넷 정보는 ‘쓰레기더미’에불과하다는 것이다. [양문출판사 제공]

이성의 섬
요제프 바이첸바움·군나 벤트 지음, 모명숙 옮김
양문, 252쪽, 1만2500원

하마터면 놓치고 지나갈 뻔했던 책이다. 요제프 바이첸바움(Josheph Weizenbaum·1923~2008)이라는 생소한 이름 때문이기도 했다. 자료를 찾아보니 올 3월 18일자 뉴욕타임스에 85세를 일기로 같은 달 5일에 타계한 그의 부음기사가 크게 실려 있다.

전 MIT 명예교수인 그는 인공지능 연구부문 선구자였다. 1950년대 미 웨인대에서 디지털 컴퓨터를 만드는 데 참여했고, 55년 GE(제너럴 일렉트릭)에서 아메리카은행(Bank of America)을 위한 컴퓨터 개발 일을 했다. 62년 MIT의 컴퓨터공학 초빙 교수로 왔다가 70년부터 교수로 수십 년간 재직했다.

한편 그는 66년 심리상담사가 사람과 대화하는 과정을 본떠 ‘엘리자’(ELIZA)‘라는 자연언어 해석 프로그램을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인간과 테크놀로지의 관계에 새 역사를 연 그가 70년대부터 인공지능의 비판자로 돌아섰다는 사실이다. 이 책은 독일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군나 벤트가 10년간 그와 교류하며 나눈 대화록이다.

바이첸바움은 과학자를 넘어선 철학자, 또 열정적인 사회비판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과학기술의 성과를 부정하지 않지만 인간이 “그 뒤꽁무니만 따라가면” 절대 안된단다. 또 “우리 사회에 고도로 발전한 과학기술과 어리석고 우스꽝스런 것들이 공존하는” 현상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이를테면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인터넷 자료의 물결이란 것이 “그것을 선택하고 모은 사람들의 진실”이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다소 과격한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인터넷 정보라는 게 “텔레비전 화면과 거의 다를 바 없는 엄청난 쓰레기”란다.

물론 그 속에 진주도 있다. 그것은 “그냥 주어지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찾아내야” 한다. 그는 또‘정보’라는 단어가 과도하게 사용될 뿐만 아니라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컴퓨터 속의 신호들은 정보가 아니라 그냥 신호일 뿐”이라는 그는 “신호들을 정보로 만드는 방법은 그것을 해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해석, 즉 가치를 판단하는 정신적인 과정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얘기다. 인간 이성의 역할을 망각한 채 ‘광기의 바다’에서 표류하고 있는 사회…. 그래서 선한 것을 행하고 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추구하는 개인들이 책임과 용기를 갖고 연대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요지다.

그가 인공지능 비판론자로 변신한 데는 사연이 있다. 자신이 개발한 컴퓨터 프로그램 ‘엘리자’를 지나치게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그는 “각각의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죽음’도 인간적인 것의 중요한 핵심이라고 했다. “그들(인공지능 연구의 주역들)은 인간의 죽음이 삶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간과하고 있어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화와 문명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일이 중요해지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들을 콤팩트디스크(CD)로 넘겨줄 수는 없어요.”

인터넷 정보(앗, 우리는 이렇게 쉽게 ‘정보’란 단어를 남용한다)가 흘러 넘치지만 바이첸바움의 말마따나 우리는 어리석고, 광적이며, 무의미한 것들에 휩쓸리는 것은 아닐까.

이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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