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휴대폰 선거' 바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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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지난주 길을 가다 돌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상대는 아탈 비하리 바지파이 인도 총리였다. '총리가 웬일로…?' 그는 숨돌릴 틈 없이 '이번 선거에서 우리 인도인민당(BJP)을 찍어달라'고 당부했다. 잠시 뒤에야 BJP가 선거전술로 활용 중인 녹음된 목소리의 '휴대전화 유세전'이라는 것을 알았다." 인도 뉴델리의 한 외국인 특파원이 최근 자신의 칼럼에서 소개한 일화다.

그러나 인도의 하이테크 선거전에서 가장 널리 이용되는 방법은 SMS(Short Message Service)로 휴대전화에 보내지는 문자메시지다. 홈페이지를 이용한 이미지 홍보도 적극 활용된다. 인터넷과 휴대전화를 주로 사용하는 35세 이하의 도시 유권자들이 공략 대상이다. 반면 농촌지역에서는 여전히 영화배우와 코미디언.가수 등 연예인들을 동원한 방송 홍보물과 벽보.포스터를 동원한 전통적인 유세전이 뜨겁다.

인도의 인구는 약 10억명이다. 70%가 농촌에서 빈곤선 부근을 헤매며 산다. 따라서 하이테크 선거전은 대도시에 국한된다.

◇승자는 하이테크=하이테크 선거전은 2002년 12월 구자라트 지방 의회선거 당시 처음 시도됐다. 당시 구자라트주 총리를 노린 나렌드라 모디 BJP 사무총장은 선거운동원 2만5000여명에게 SMS 이용방법을 교육했다.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 2000만명이 넘는 전체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소신과 새로운 정보도 실시간 제공했다. 하루 홈페이지 방문객이 2만명을 넘어섰다. '역동적인 인도를 만들 초석'이란 모디의 이미지는 자연스레 유권자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반면 모디의 경쟁상대였던 국민회의 측은 차량유세, 벽보, 플래카드, 선거원 방문 등 기존의 선거운동방식을 고집했다.

결과는 모디가 이끄는 BJP의 압승이었다. "전체 인구 중 인터넷이나 휴대전화 사용자가 극히 적은 상황에서 하이테크 선거방식은 별 효과가 없다"는 국민회의 측 주장과는 달리 유권자들은 모디의 미래지향적인 이미지에 끌린 것이다. 모디의 승리이기에 앞서 하이테크의 승리인 셈이다.

매년 급증하는 인도의 휴대전화 사용 인구만 보더라도 첨단기기를 활용한 선거전의 전망은 밝다. 인도 휴대전화사업자협회(COAI)에 따르면 2002년 말 1000만명이었던 인도의 휴대전화 사용자는 현재 2464만명. 이런 추세라면 2008년엔 전체 사용자가 1억명을 넘어서게 된다. 이용자층은 학생과 자영업자로 확대되고 있다. 사상 처음 전국 규모로 실시되는 전자투표방식 또한 하이테크 유세전에 대한 유권자들의 거부감을 줄였다.

결국 야당들도 하이테크 시스템 구축에 나섰다. 국민회의는 지난해 11월 전문업체를 고용해 도심 유권자 80만명의 이름과 주소를 담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했다.

◇BJP, 여론 선점=직접선거로 선출되는 인도 하원의 임기는 5년. 당초 임기가 끝나는 오는 9월 총선이 치러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바지파이 총리는 지난 2월 의회를 해산했다. 여론이 자신에게 유리할 때 총선을 치르겠다는 복안이었다.

매년 5%를 웃도는 인도 경제성장률과 연평균 27%의 고도성장을 지속하고 있는 정보기술(IT)산업이 바지파이 총리의 가장 큰 원군이다. 오늘날 인도의 IT소프트웨어.서비스 부문의 수출 규모는 99억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한국.중국 등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도 적극적이다. 국경분쟁 등으로 끊임없이 갈등하고 대립해 왔던 파키스탄과도 평화협상을 시작했다. 그러면서 버스 노선과 항공편을 재개하는 등 양국 간 경제교류도 활발해졌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BJP의 지지율은 상승세다. 현지 언론들은 "BJP를 중심으로 하는 연립정권 국민민주연합(NDA)의 의석이 1999년 총선 때보다 크게 늘어난 360석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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