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각산 '소리 없이' 살아 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3면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용각산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성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광고 카피다.

가래를 제거하고 기침을 진정시키는 '진해거담제' 용각산은 1967년 보령제약이 처음 발매한 뒤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요즘엔 일반인의 기억에서 사라진 듯했다. 96년 2월 게재한 신문광고를 끝으로 아무런 마케팅 활동을 펼치지 않아 더욱 그랬다.

하지만 용각산은 건재했다. 보령제약 측은 12일 "모든 마케팅 활동을 중단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40억원 안팎의 매출을 꾸준히 기록 중"이라고 밝혔다.

96년 4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면서 광고를 중단했지만 2002년 42억원, 지난해 40억원어치가 팔렸다. 지난해 기준으로 진해거담제 시장의 점유율 44%를 자랑하고 있다. 보령제약으로선 이만한 '효자 상품'이 없는 셈이다.

서울 수유3동 주인약국 최용진(49)약사는 "용각산을 찾는 손님 중에는 정기적으로 오는 손님이 대부분"이라며 "한달에 10갑은 꼬박꼬박 나가 물량이 떨어지지 않게 신경 쓰는 품목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지난 37년간 팔려나간 용각산은 총 7100만여갑. 무게로는 1775t에 달한다. 국내 제약시장의 '스테디 셀러'인 셈이다. 목을 많이 쓰는 가수, 학교 교사, 자동차 운전자들에게 필수품처럼 여겨지고 있다고 회사 측은 진단했다.

보령제약 장낙후 마케팅기획실장은 "소비자의 제품에 대한 만족도와 충성도가 매우 높기 때문"이라며 "37년간 변하지 않은 용기(지름 5.5㎝, 25g)의 디자인, 약품의 조성도 소비자의 신뢰를 더했다"고 설명했다. 가격은 67년 290원에서 올해 3000원 안팎으로 올랐다.

2002년 보령제약은 용각산을 먹기 쉽게 1회용 포장으로 바꾼 '용각산 쿨'을 내놨다.

물 없이 복용할 수 있도록 알갱이 형태로 만들고 복숭아 향과 멘톨을 집어넣어 입안의 상쾌함을 더했다. 알갱이를 강조하기 위해 광고카피도 "용각산 쿨은 소리가 납니다"로 했다.

시장 반응은 옛 용각산의 압승이었다. 왠지 소리가 나면 약효가 떨어질 것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으로 회사 측은 판단하고 있다.

심재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