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韓.美관계의 북한의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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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북한에 대한 식량원조문제를 둘러싼 한.미(韓美)양국 정부의 견해차이는 보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판단이 있는 것같다.주로 서울에서는 미국이 한국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북한을 지원한다고 생각하는 반면 이 곳 워싱턴에서는 오히려 한국 정부가 일관성도,신축성도 없다고 보고 있는 것같다.심지어 워싱턴에는 최근 한국이 대외정책의 기본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하는 사람마저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문제는 최근의 한.미관계를 북한은 어떻게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점이다.원래 북한은 「미제」와 「남조선」을 같은 범주에 넣고 적대시해왔다.그러나 북한은 공산주의가 몰락하고 냉전(冷戰)이 종식되면서 한국을 미국으로 부터 분리시키는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북한은 한국을 미국으로부터 분리함으로써 미국의 지원만 차단할 수 있다면 한국은 안보.경제 모두 저절로 무너질 수밖에 없는 허약한 존재라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한.미관계를 끊어놓기 위한 북한의 전략은 매우 논리적이고 명확하다.그들은 남한에 대해서는 모든 대화와 접촉을 거부할 뿐만아니라 극도의 적대심을 나타냄으로써 한국이 북한에 대해 부정적태도를 취하지 않을 수 없게끔 상황을 만들어 놓은 반면 미국에대해서는 유연하고 우호적인 자세를 나타내면서 실제로 미국이 북한과 대화를 해야할 필요를 느끼게끔 핵문제.미사일 수출문제 등을 상정해놓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저의는 분명하다.그들은 북한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입장에 자연히 거리가 생길 수밖에 없도록 삼각 게임의 구조를 만들어 놓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처럼 한.미간에 거리를 두게 하려는 북한의 입장에서보았을 때 최근에 나타난 북한식량지원 문제에 대한 한.미간 이견(異見)의 노정은 그들의 전략이 성공하고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점이다.그리고 북한이 그들의 전략이 성공하고있다고 믿는한 한국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그들의 전략을 포기하거나 수정해야 할 인센티브는 없다고 보아야 한다.그러니까 북한의자세는 더욱 경직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는 어렵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우선 한.미 양국이 공통된 문제의식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과연 우리가 북한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우리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하는 가장 기본적인 문제들에 대해 한.미 양국정부의 지도자들 사이에 솔직하고 충분한 대화가 있어야한다.기본적인 문제의식에 거리가 있게 되면 구체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인 정책문제에 대한 협의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들 자신의대북(對北)정책부터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물론 대북관계에 대한 우리의 기본자세와 당위적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추구해야 할 정책목표의 우선순위와 현실적으 로 가능한 정책수단들,그리고 그와 같은 정책수단을 활용할 수 있는 행동계획등이 명백하게 정립되고 있다고는 할 수 없다.특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적 사고다.그러니까 우리들의 계획된 행동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정책은 감 정의 표현이 아니다.어디까지나 주어진 현실을 조정함으로써 원하는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행동계획이어야 한다.
다음 미국과의 정책조정은 우리들의 정책구상이 명확하게 정리된이후에 생산적일 수 있다.설득력있는 우리의 정책구상이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정책을 반대한다는 것은 한.미간에 긴장만 조성할뿐이다. 마지막으로 대북정책을 추진하는데 있어 국내정치의 제약을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리더십이 필요하다.민주국가에서 국내정치의 한계를 벗어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위대한 대외정책을 성취한 처칠.드골 같은 지도자들은 자신 들이옳다고 믿는 대외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커다란 정치적 모험을 서슴지 않았던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북한의 전략에 말려드는 외교는 금물(禁物)이다.특히 한국과 미국을 분열시키려는 북한의 전략을 경계해야 한다.그리고 우리의 국력에 걸맞은 자신감을 갖고 북한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
(워싱턴에서) 金瓊元 사회과학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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