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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간 공산당 앞잡이로 악명 소련작곡가동맹위원장 건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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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91년까지 40년간 공산당의 하수인을 자처하며 악명이 자자했던 소련작곡가동맹 위원장이 소련 붕괴 이후에도 버젓이 활동하고있어 눈총을 받고 있다.
지난 1월말부터 크렘린 인민궁전에서 연일 매진을 기록하면서 모스크바 시민들의 발길을 모으고 있는 발레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음악을 작곡한 티콘 크레니코프(83).그는 48년 소련작곡가동맹 회의 석상에서 문화장관 츠다노프의 사 주를 받아 행한 연설에서 쇼스타코비치.프로코피예프의 작품을 「형식주의」로 낙인찍어 이들의 예술혼을 멍들게 했던 장본인이다.
크레니코프의 이번 공연은 러시아를 침공했던 나폴레옹의 일생을다룬 작품으로,흐루시초프 서기장 재임 당시 건축된 러시아 최대규모의 공연장 크렘린 인민궁전(6천석)에서 미국의 냉난방기기 업체인 요크 국제상사의 후원을 받아 절찬리에 공 연중이다.
스무살때 피아노협주곡과 교향곡을 발표한 그는 「모스크바의 쇼스타코비치」라고 불릴 정도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인정받았다.
지휘자 레오폴트 스토코프스키나 유진 오먼디,샤를 뮨슈 등도 그의 교향곡 제1번을 즐겨 연주했다.또 바이올리니스 트 레오니드코간에게 헌정된 바이올린협주곡 제2번은 러시아 출신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단골 레퍼토리.
그가 공산당 수뇌부의 총애를 받아 작곡가동맹 위원장에 임명된것은 39년 레닌의 일대기를 다룬 오페라 『폭풍속으로』를 발표하고부터였다.
크레니코프는 소련작곡가동맹을 이끌면서 재즈와 아방가르드 무조음악을 소련에서 추방하는데 앞장섰다.
그는 자신이 스탈린 사후 소련 당국에 건의해 쇼스타코비치등 음악가들에 대한 당국의 비판을 철회시켰다고 주장한다.그가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의 서방 망명을 몰래 도와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는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로스트로포비치의 귀향 연주회에도 참석하지 않았다.로스트로포비치의 아내 소프라노 갈리나 비시네프스카야는 회고록에서 그를 가리켜 『기회주의자이며 교활한 간신배』라고 말했다.그러나 90년 소련작곡가 동맹 에 선거제가도입되고 나서도 위원장으로 재선될 정도로 추종세력이 만만치 않다.
이장직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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