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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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퇴근 후 아리영이 묵고 있는 호텔의 커피숍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본식 정원이 유리벽 너머 가득히 펼쳐져 있다.작은 폭포가보이는 자리에 좌정하여 약속시간 10분전부터 기다렸다.
주변 사람들의 일본말이 한무더기 소리가 되어 아리영의 귀를 덮었다.흡사 경상도 사투리를 듣는 것같다.일본어의 골격은 경상도 사투리로 이뤄져 있고, 문화적인 용어 가운데는 대체로 전라도 사투리가 많다는 나선생의 얘기를 실감할 수 있 었다.
약속시간을 10분이나 넘긴 다음에야 시동생이 나타났다.
『계속 전화가 걸려와서 늦었습니다.…레모네이드 시킬까요?』 형보다는 싹싹한 편인 시동생은 앉자마자 음료를 주문했다.아리영이 레모네이드 좋아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다.서둘러 오느라 목이 탄다며 자신은 생맥주를 시켰다.
『일본엔 오랜만에 오셨지요? 잘 오셨습니다.두루 구경하고 가십시오.가이드겸 통역을 하나 소개해 올릴까요? 아주 멋진 여성이 있어요.』 그는 왠지 들뜨고 있었다.
레모네이드와 생맥주가 탁자 위에 날라졌다.새콤달콤한 레모네이드는 시원했다.아리영도 목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서방님! 축하해요.아기를 보게 되셨어요.』 난데없이 축하의말부터 꺼냈다.그것은 진심이었다.손이 귀한 집안에 아이가 생기는 것 이상의 경사는 없을 것이다.
『아이요?』 시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리영을 쳐다봤다.
『애소 아시죠? 애소가 서방님 아기를 가졌어요.』 아리영은 국어 교과서라도 낭독하는 소녀처럼 또박또박 말했다.
생맥주 조끼를 들던 손이 갑자기 멎었다.
『애소가 제 아이를 가졌다니 그게 무슨 말씀인가요?』 『서방님! 애소가 임신했어요.아기 아버지가 누구냐니까 서방님의 아기라고 실토했어요.』 말소리를 약간 높였다.시치미를 떼며 미리 방어벽을 치듯 하는 시동생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형수님….』 시동생이 선웃음을 웃으며 아리영을 불렀다.남편의 선웃음과 영락없이 닮았다.소름이 끼쳤다.
『씨 뿌리지 않고 어떻게 싹이 납니까?』 『네?』 아리영은 멍청히 되물었다.
『죄송합니다.이런 막가는 소릴해서….하지만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시동생이 생맥주를 단숨에 들이켜고나서 입을 열었다.
글 이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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