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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 육수, 쇠고기김밥도 원산지 표시해야 하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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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 확대 실시 첫날인 8일 농산물품질관리원 박형동 팀장(中)이 서울 수송동의 한 음식점에서 올바른 원산지 표시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박종근 기자]

8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청 인근 156㎡ 면적의 대형 설렁탕집. 이날 전면 시행에 들어간 쇠고기 원산지 표시제도가 제대로 지켜지는지 단속하려고 농산물품질관리원의 박형동 단속팀장 일행이 출입구에 들어서면서 신분을 밝혔다. 그러자 50대 초반의 식당 여직원 도모씨가 “알고는 있는데…본사에서 아직 원산지를 표시한 메뉴판을 새로 만들어 보내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식당의 벽면에는 ‘탕류:국내산 한우, 육우, 젖소’ ‘육회:국내산 젖소’ 등의 문구가 적힌 A4용지 한 장이 덜렁 붙어 있었다.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음식점에 쇠고기 원산지표시제가 시행된 첫날, 대형 음식점들은 대부분 형식적으로 표시를 내거나 시간상의 이유를 들어 원산지 표시를 미루고 있었다. 영세 식당은 새 규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아현동의 50㎡ 정도 되는 K분식점은 쇠고기가 들어가는 ‘불고기 비빔밥’ 메뉴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서울 청진동의 한 김밥집 역시 ‘불고기 김밥’ 옆에 원산지 표시가 없었다. 이들 음식점의 주인들은 “쇠고기를 파는 것도 아닌데 무슨 원산지 표시냐”고 반문했다. 수십 군데 가맹점을 둔 냉면 M프랜차이즈업체 가맹점들은 냉면 위에 얹는 고기꾸미의 원산지 표시를 했지만 육수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개정된 농산물품질관리법에 따르면 원산지 표시를 하는 대상은 ‘모든 음식점과 집단급식소’다. 표시 대상 음식은 ‘쇠고기가 들어간 모든 음식’이다. 쇠고기를 이용한 탕·국·반찬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음식업중앙회의 김태곤 홍보국장은 “장조림처럼 쇠고기가 포함되는 밑반찬을 아예 상에 올리지 않는 식당이 늘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강화된 원산지표시제를 반기는 업체들도 있었다. 단속반과 함께 찾은 서울 수송동 75㎡ 면적의 삼성식당 주인 황승우(27)씨는 자신 있게 메뉴를 내밀었다. 20여 분의 검사 끝에 “메뉴에 적시된 쇠고기들이 모두 맞다”는 결론이 나오자 황씨는 “공문을 꼼꼼하게 읽고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고 흐뭇한 표정이었다.

샤브샤브 전문점 ‘채선당’과 본죽·본비빔밥은 전국 모든 가맹점의 메뉴와 게시판을 새 규정에 맞춰 갈면서 ‘안심 먹거리’를 주제로 포스터까지 제작했다.

한편 농림수산식품부는 전국 64만여 군데 음식점을 데이터베이스(DB)화한 뒤 무작위로 표본을 뽑아 쇠고기 원산지 표시 단속을 하기로 했다. 원산지 표시를 위반한 음식점의 명단을 공개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박덕배 농식품부 차관은 “3년에 한 번 정도는 모든 음식점이 점검을 받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고 전했다. 이 경우 연간 20만여 음식점이 점검 대상이 된다.

농식품부는 시행 초기의 혼선을 줄이기 위해 100㎡ 이하인 소형 음식점에 대해서는 9월까지 계도 기간을 두기로 했다. 이 기간 원산지 표시를 하지 않아도 제재를 받지 않지만, 원산지를 속일 경우 단속 대상이 된다. 또 원산지를 속여 표시한 음식점을 신고한 시민에게는 유통 규모에 따라 최대 200만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

글=문병주·조민근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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