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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충식 연금'이 국민불신 키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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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나는 3월 22일자 '내 생각은'에 우리나라 국민연금제도가 운영원리 선택에 있어서 무원칙성을 보이고 있다는 논지의 글을 기고했다. 논의는 국민연금제도가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의 속성을 동시에 가지는 혼합방식을 운영원리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발했다. 자세히 설명하면 혼합방식은 개인이 보험료를 납부해 조성한 기금에서 연금을 받도록 하는 적립방식, 그리고 별도의 기금 없이 근로세대가 매년도 자신의 소득으로 그해의 노인세대를 부양하도록 하는 부과방식을 절충한 운영방식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혼합방식은 적립기금 규모나 보험료 수준이 어느 정도가 돼야 합당한지 판단할 수 있는 객관적 근거를 제시할 수 없다는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해 노인철 국민연금연구센터 소장은 3월 26일자 '내 생각은'에 비판의 글을 올렸다. 논지의 공통점을 정리해 보면 국민연금제도의 운영방식은 정책목표와 사회여건을 고려해 결정해야 할 사안일 뿐, 단순히 양자택일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흔히 수정적립방식으로 불리는 혼합방식은 가입자들이 은퇴 후 자기가 낸 보험료에서 연금의 일정부분을 받고 나머지는 자녀세대로부터 지원받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전적으로 세대 간 계약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부과방식보다 비용부담이 세대별로 공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연구센터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무원칙성을 스스로 자인하고 있다. 첫째, 혼합방식은 가입자 세대의 기여분과 자녀세대로부터의 지원분이 각각 어느 정도의 비율로 돼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관련해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한 제도운영의 자의성은 세대 간 공평한 부담이라는 장기적 정책목표가 경기부양이나 실업극복 등 단기적 정책목표를 위해 희생될 개연성을 높게 할 수 있다.

둘째, 정부는 국민연금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하는 이유로 '저부담.고급여'의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연금급여가 본인의 기여 이외에 추가로 자녀세대의 지원을 받아 지급될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러한 급여구조는 모순이 아니라 오히려 당연한 현상이 된다는 점이다.

셋째, 정부는 2047년에 예상되는 적립기금 고갈 문제에 대비한 연금개혁의 시급성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는 설령 적립기금이 고갈된다고 하더라도 결코 연금 지급 중단 사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언하고 있다. 정부는 한편으론 기금 고갈의 위험성과 제도개혁의 시급성을 적립방식의 시각에서 경고하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연금 지급의 연속성을 부과방식의 시각에서 주장하면서 국민을 안심시키려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이중적 자세는 국민연금제도의 취지나 운영원리에 대한 이해의 혼란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따라서 현재 국민이 가지고 있는 불신은 흔히들 말하는 제도에 대한 무지나 오해의 결과가 아니라 원칙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이정우 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