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100년 한국에 무엇을 남겼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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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하며 4년 만에 재개관한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 경주에서 출토된 8세기 통일신라 시대의 마리아상.

서울 상도5동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 로비 1층 천장에는 김정호(?~1864)의 '천문도'가 큼지막하게 재현돼 있다. 별자리마다 광섬유 특수등이 반짝거린다. 2층 바닥에는 최한기(1803~75)의 '지구의' 중 북반구 부분이 역시 모형으로 만들어졌다.

기독교 박물관과 천문도, 또 지구의? 연관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에서 기독교와 천문도는 모두 근대의 산물이다. 서학(西學)으로 지칭되는, 이른바 서양 사상.문물의 상징물이다.

지난 8일 4년 만에 재개관한 숭실대 기독교박물관은 종교와 역사의 함수관계에 주목하고 있다. 19세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끼친 영향을 조명했다. 재개관이라 하지만 신축과 다름없다. 35억원을 들여 첨단 항온.항습.방화시설을 갖췄고, 12억원을 투자해 각종 유물을 보존 처리했다. 여느 국립박물관에 뒤지지 않는 시설과 규모다.

박물관의 주제는 '신앙'으로서의 기독교가 아닌 '문화'로서의 기독교다. 근대 이후 한국 사회의 기독교 수용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특히 서양에 의해 강요된 기독교가 아닌 한국인이 주체적으로 받아들인 기독교를 파고들었다.

기독교가 7~8세기 중국을 통해 통일신라에 들어왔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유물도 있다. 1956년 경주 불국사에서 발견된 '돌십자가'와 '마리아상'이다. 손을 입에 문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을 형상화한 '마리아상'의 경우 전체 형상은 불상 모양이나 아이와 여인의 모습이 기존의 불상과 크게 다르다.

키워드는 세계관의 변화와 민족의식의 성장이다. 기독교는 중국 중심의 화이관(華夷觀)에 머물렀던 한국인의 시야를 동.서양 전체로 확대시켰고, 평등.자유를 생명으로 하는 근대 시민의식을 자극했다. 성경.찬송가.전도문 등을 한글로 제작, 한글의 보급에도 지대한 역할을 했다.

당시 기독교는 '한국적' 정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예컨대 영국 작가 존 번연(1628~88)의 종교적 우의 소설 '천로역정' 번역본은 조선의 풍습과 문화에 맞춰 기술됐고, 등장 인물 또한 한복을 입고 갓을 쓰고 있다. 최병현 숭실대 박물관장은 "초기 한국의 기독교는 민족 속에 단단한 뿌리를 내렸다"며 "외형적 성장과 서양화한 의식을 좇는 요즘 기독교를 반성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1000여점이 공개된다. 관람할 때는 2층 고고미술실과 민족운동사실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국내 최대의 빗살무늬토기, 국보 141호 청동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 국보 231호 청동기 거푸집, 보물 569호 안중근 의사 유묵, 보물 883호 지구의 등을 볼 수 있다. 청동잔무늬거울의 정치한 문양 하나로도 발품이 아깝지 않다. 관람료 무료. 02-820-0752~3.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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