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트렌드>리메이크 최근의 추세를 진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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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이른바 리메이크 혹은 리바이벌 현상이 치고 들어오는 경로는 두 갈래다.하나는 인간 존재의 영원한 약한 고리인 향수다.이 향수는 우리 정서의 급소다.그것은 우리 몸의 급소가 무엇엔가에찔렸을 때 꼼짝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는 것과 마찬가지의 결과를 보인다.향수가 가장 비등할 때가 언제인가.이 역시 대개 두경우다.하나는 자기 앞에 놓인 현실이 불투명하고 그것에 연해 자신의 정체성이 불분명할 때,다시말해 자기 해명이 안될 때다.
그때 인간은 눈을 뒤로 돌린다.과 거는 언제나 확실한 법.그 과거 속의 자신의 세계,지나온 길은 분명하게 보인다.향수가 활황일 때 그것의 비등점과 현실의 혼돈스러움의 비등점 사이의 정비례 여부를 조회해볼 필요가 있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현재가 과거를 포용하는 넓이를 가질 때다.과거의 온갖 남루함과 비천함도 포용할 수 있는 현실은 그 과거가 자신의 이력서에 당당히 등재될 수 있을 때다.이는 특무상사가 전쟁터에서 생긴 찢어진 상처를 훈장처럼 오인 하는 것과 거의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다.우리는 「금순이」와 흥남부두에서피어린 이별을 했지만 국제시장을 거쳐 급기야 큰 부를 쌓은 수많은 「삼팔 따라지」가 『가요무대』앞에 앉아 있을 때 꼭 그만큼의 풍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 두번째가 바로 앞서 이야기한,리메이크가 치고 들어오는 두갈래 중 두번째 것과 바로 연결된다.그것은 역시 이윤생산이라는마케팅의 적극적인 동기로 자리하는 부분이다.남루한 과거를 현실에서 다시 불러올 때 과거의 그 남루함 그대로를 불러올 수 없다.거기에는 필경 특정한 호출방식과 연출방식이 필요하다.그것을자본이 떠맡는다.「배 부르고 등 따뜻한」사람에게 과거는 「소비를 통한 소비」의 대상이 된다.첫번째 소비는 과거가 역사의 맥락으로서 작용하는 성찰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안온한 현재를 확인,그리고 만족시켜주는 한에서만 효용가치를 지닌다는 점에서 역사의 소비다.두번째 소비는 그 역사의 소비를 특정한 방식으로실행시키는 물건,즉 역사의 이미지를 상품화한 것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실제 재화의 소비다.
이것이 「배부르고 등 따뜻한」사람들이 리메이크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취하는 요건이다.리메이크는 과거를 현재화시키고 그것을 통해 역사와 자신의 조건을 통찰하는 것에서 정당성을 얻는다는 일반명제는 적어도 이들에게는 「귀신 여울목 건너는 소리」일 따름이다.이들의 방식은 리메이크의 저류인 역사과정의 실체가 아니라 그 실체가 한번 둔갑한 순수 이미지,즉 자신의 현재 조건에가장 적당한 의미만의 이미지를 낚시질하는 방식이다.말하자면 나르시시즘의 강도를 더욱 높여줄 대상 을 자신의 방식으로 이미지화한다는 것이다.
역사의 탈역사화 현상 혹은 역사를 이야기하되 실제 역사는 유실된다는 식으로 향수산업.리메이크 등을 진단하는 것도 이런 문맥에 연유해서다.리메이크 자체를 놓고 재판을 할 수는 없다.그것 자체로는 기소불능이다.그러나 리메이크와 역사의 표백화.이미지화.퇴영 등의 공범관계에 대해선 끊임없는 「수사」의 관점이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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