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탄연 글씨 비 복원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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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품사현(神品四賢)의 한 명으로 고려시대 명필가 탄연이 글씨를 쓴 비(碑)가 복원됐다. 춘천 청평사의 ‘진락공 중수 청평산 문수원기(眞樂公 重修 淸平山 文殊院記)’다.

청평사 문수원기는 탄연이 썼다는 기록이 있는 유일한 글이다. 북한산 승가굴중수기, 청도 운문사원응국사비의 글씨도 탄연이 쓴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부분적인 훼손으로 기록은 없다.

춘천시는 국비 등 1억2000만원을 들여 청평사 문수원기를 복원, 이달 중 제막한다고 6일 밝혔다.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파손된 지 55년여 만에 비가 처음 세워진 878년 전인 1130년(고려 인종 8년) 당시의 모습을 찾았다.

문수원기는 973년 창건된 청평사의 역사와 이곳에 은거하며 도를 닦던 고려학자 이자현(1061~1125)의 행적을 기록한 비.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동생으로 당대 최고의 문장가 김부철(1079~1136)이 비문을 짓고, 탄연(1070~1159)이 글씨를 쓴 것으로 고려시대 사상사와 불교사, 서예사를 살필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비는 오랜 세월 풍화로 훼손돼다가 한국전쟁 때 청평사가 전소되면서 파괴돼 사라져 받침돌만 남았다가 1968년 절터에서 비편이 발굴돼 관심을 끌게 됐다.

1980년대 후반 재야 서지학자 박영돈씨가 탁본 등을 활용해 비의 뒷면(비음)을, 1993년에는 춘천의 사학자 홍성익씨(48)는 앞면(비양) 상당수를 복원했다. 그럼에도 30여 글자는 탁본으로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동덕여대 신동하 교수가 규장각에서 알려지지 않았던 문수원기 탁본을 찾아 내 뒷면의 읽지 못했던 글자를 찾아냈다.

문수원기 복원이 본격 논의된 것은 2006년 말. 일본에 있던 북관대첩비가 100년 만에 환수돼 북한에 보내지고, 인각사 보각국사비가 복원되면서 문화재청은 문수원기 복원가능성을 타진했다.

강원도와 춘천시는 강원지역문화연구회에 복원을 의뢰했다. 문화연구회는 기존 연구자료 이외에 동문선, 조선금석문총람 등의 문헌과 비첩, 탁본, 사진, 비편 등의 부분 자료를 비교 분석하며 탄연의 서체를 복원했다. 앞면의 없는 글자는 집자(集字)를 했다. 탁본 마다 다른 글자의 굵기, 뚜렷하지 않은 선, 글자의 간격 등을 바로 잡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도 동원했다.

이런 노력 끝에 높이 2m 34cm, 넓은 폭 1m 11cm, 좁은 폭 20.5cm의 비를 복원했다. 비대는 높이 35cm, 넓은 폭 1m70cm, 좁은 폭은 73cm다. 원래 비신 재질은 점판암이나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아 충남 보령의 오석을 사용했다.

연구회 심창섭씨는 “문수원기는 청평사의 역사는 물론 고려 중후기의 불교사를 조망할 수 있는 유적이면서 탄연의 걸출한 명필을 만날 수 있어 서예인의 발길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찬호 기자

◇신품사현=서화(書畵)로 유명한 신라 때의 김생과 고려시대 탄연, 최우, 유신을 통틀어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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