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업은 4대째 사랑의 인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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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재즈 연주하는 치과의사’로 유명한 민병진(56) 서울치과병원 원장은 요즘 얼굴에 웃음꽃이 한창이다. 외동딸 승기(26) 씨가 지난달 말 뉴욕대 치대 졸업장을 받아 대를 이었기 때문이다. 민 원장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뒤를 이은 4대째 의사 집안 탄생이다.

“일본에서도 초밥 집을 제대로 하려면 적어도 3대는 지나야 한다고들 하잖아요. 직업의 깊이를 알기 위해 최소한도 백 년은 흘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런 의미에서 딸이 스스로 가업을 이어준 게 참 행복합니다.”

민 원장이 의술의 길로 들어선 것도 집안의 영향이 컸다. 그의 할아버지 민영성씨는 경성제대 의학부를 2회로 졸업하고 외과의사로 일생을 바쳤다. 아버지 민건식(84)씨는 서울대 의대를 마치고 이비인후과 개업의로 일했다. “치료비가 없어 고구마를 대신 가져온 할머니를 따뜻하게 맞으시던 할아버지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아버지도 식사를 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환자들이 오면 항상 진료가 우선이었죠.”

그러다 보니 민 원장도 네 살 무렵부터 자연스럽게 의사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다. 경기고 재학 시절 경영학에 잠시 관심을 뒀으나 의업을 잇기로 최종 결심했다. 치대를 선택한 건 가업은 잇되, 의자에 앉을 틈도 없이 진료했던 아버지와는 다른 길을 가고 싶어서였다. “치과의사는 적어도 앉아서 진료하잖아요. 나름의 절충이었죠.”

그렇게 서울대 치대에 들어갔고, 미국 하버드대 대학원과 보스턴대 치대에서는 교정 전문으로 학위와 면허를 취득했다. 귀국 뒤엔 ‘교정 전문 개업의’와 ‘치과종합병원’의 개념을 도입했다. “처음엔 다들 말렸죠. 교정만 가지고는 안 된다고요. 하지만, 자신이 있었고 결국 해냈죠. 지금은 교정 전문의만 수백 명이에요.”

딸 승기 씨가 존스홉킨스 의대 졸업 뒤 뉴욕대에서 치의학을 전공하기로 결심한 것도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고 한다. 졸업 뒤 하와이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준비중인 승기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선택하자고 결심했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의사를 택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민 원장 부친과 본인, 그리고 딸 승기 씨의 공통점은 의술 이외에 열정을 가진 분야가 따로 있다는 점이다. 음악에 대한 민 원장의 열정은 사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오디오 및 레코드 원판 수집에 열심이었고, 클라리넷도 부산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등 전문가 수준으로 연주했다. “레코드 원판이 헨델부터 비틀스까지 없는 게 없었죠. 방송국에서 아버지께 판을 빌리러 올 정도였으니까요. 제게도 1970년대 비틀스 원판을 선물해 주셨어요.”

그래서인지 민 원장도 음악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치대 시절, 같은 대학교 학생이던 이수만 씨와 의기투합해 ‘들개들’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공연했다. 재즈 콘서트도 여러 번 열었고, 그 인연으로 텔레비전 광고에도 출연했다. 방송 출연과 재테크 관련 잡지 출판 등, 전방위적 활동을 펼쳐왔다. “한때는 제가 치과의사를 그만뒀다는 소문까지 돌았을 정도에요. 하하.”

지금도 신사동의 병원 계단엔 첼로가 세워져 있다. 피아노 및 기타 등이 있는 소규모 공연장까지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지난해엔 치과의사 수백 명을 모아 임플란트 회사인 ‘바이오칸’을 설립, 상장을 준비 중이다. 같은 24시간인데, 짬은 어떻게 내는 걸까. “저는 원래 가만히 쉬고 있는 게 더 힘들어요. 텔레비전도 거의 안 보고, 골프도 치지 않습니다. 한 번 하자고 마음먹으면 그냥 실행에 옮겨버리죠.”

승기 씨는 미술과 요리에 관심이 많아 유명한 프랑스 요리학원인 ‘르 코르동 블루’에서 1년간 수업을 받을 예정이다. “낮에는 진료, 밤에는 요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다. 의술과 아름다움에 대한 열정은 부전여전(父傳女傳)이다.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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