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하는新인간>15.끝.美밀스 한국상품직매장사장안필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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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미국시장에서 한국기업이 제법 뿌리내렸다고 하지만 유통사업쪽으로 가면 턱도 없다.정부가 말끝마다 유통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해도 실제 어디서부터 손대야할지 모른다.일부 대기업들이 어설프게덤벼봤으나 손해만 잔뜩 본채 아예 등을 돌리고 있는 상태다.
그처럼 어렵다는 유통사업에 뛰어들어 겁없이 판을 벌이고 있는젊은 한국인 사업가가 있다.
안필호(安弼鎬)사장.38세.그는 미국 최대의 공장직매장 체인인 「밀스 코오퍼레이션」을 파고들어 「한국상품 직매장」을 차렸다. 알려진대로 최근의 미국 유통시장은 중간유통 과정을 과감히생략한 대형 공장직매장(아우트렛)들이 대도시 주변에 등장하면서기존 유통망을 뒤흔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 분야 선두주자인 「밀스」는 워싱턴.시카고.필라델피아.플로리다에 이어 초대형 쇼핑센터를 향후 10년간 여덟개를 더 지어나갈 계획이다.安사장이 1차로 파고든 곳은 워싱턴지역 체인인 포토맥 밀스.출입문 정면의 목좋은 곳에 「아우트렛 투 더 파 이스트」라는 대형간판을 내걸고 1천평 규모의 한국상품 전용매장을 지난해 12월부터 연 것이다.
『미국시장에서 한국 브랜드 상품을 팔 수 있는 유통망을 구축하려면 딱 한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힘센 놈들에 대항해 싸우려할 게 아니라 그들 네트워크 속에 끼어들어 함께 돌아가는 겁니다.』 安사장은 간단명료하게 자신의 사업논리를 편다.미국의 유통망을 쥐고있는 집단은 뭐니뭐니 해도 유대인들이어서 유대계 초대형 유통업체인 밀스 체인의 한 구석이라도 발을 들여미는 것이상책이라고 판단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뭘보고 밀스 같은 세계적인 대기업이 젊은 한국인에게 선뜻 매장을 내준 것일까.
安사장이 밀스를 설득시킨 것은 결국 아이디어 덕분이었다.밀스의 종래 경영방침은 회사별로 점포를 임대해주는 것이었으나 安사장이 「한국관」이라는 국가별 개념을 새로 개발해 제시한 것이 적중했던 셈이다.
그로서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밀스가 쇼핑 센터 체인을 미국전역으로 계속 확대하고 있어 安사장 역시 이들을 따라 한국관 설치를 계속 확대해나갈 작정이다.한국관에 관한한 밀스로부터 독점권을 따 놓았으므로 다른데서 집적대도 소용없다.
얼마전 국내 모 대기업이 가로 채려다가 밀스로부터 망신만 당했다.시카고.필라델피아 지역 쇼핑센터에 이미 3천평 규모의 매장을 확보해놓았고 올 11월 세워지는 캘리포니아 지역 밀스에도예약해놓았다.
그러나 미래의 설계만으로 안되는 것이 현실 세계다.한국상품 직판장을 어렵사리 열어 놓았건만 정작 한국기업들의 호응이 신통치 않다.1천평의 매장에 물건이 제대로 들어서고 安사장 회사 수지도 어느 정도 맞추려면 30개 업체가 입주해야 한다.그러나지금까지 14개밖에 안되는 것이 당장의 어려움이다.
여기까지 오는 데도 아슬아슬한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로 미국측파트너를 설득해봐야 소용없는 일.다투어 입주신청을 해야할 한국기업들이 오히려 미온적인 반응을보이는 바람에 번번이 낭패감을 맛봐야 했다.
『온갖 자료를 다 만들어 서울에 가 기업들에게 설명해봐야 믿어 줘야지요.젊은 재미교포한테 자칫 사기나 당하는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초리로만 대하니 잘 될리 없었지요.그나마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벌써 주저앉았을지도 모릅니다.』 미국시장의 유통망 문제로 고심하던 KOTRA 미주본부에서도 安사장이 벌이는 이 사업을 놓고 여러모로 저울질한 끝에 공식 지원키로 결정했다.사업의 방향이 옳고 추진하는 사람 역시 자질을 갖췄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경력을 봐도 그가 얼마나 도전적인 인물인가를 단적으로 알수 있다.덕수상고를 나와 해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친 그는 부모따라 미국에 이민온 후 별 장사를 다 해봤다.맨해튼 거리의 과일가게,워싱턴의 식품점,군부대 앞에서의 세탁소,볼티모어 의 플리마켓(도떼기시장)….타고난 건강으로 닥치는대로 일했고 하는 일마다돈을 벌었다.
군부대와 독점계약을 하고 한때는 세탁소를 일곱개까지 운영했다.『군복만 해도 수백만 벌은 빨았을 겁니다.풀을 빳빳하게 먹인군복을 다리미질하다가 조는 바람에 코끝을 덴 적도 있었지요.빨랫감이 밀려 하루에 30분밖에 못 자고 계속 다리미질해야 하는날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세탁소를 정리한 돈으로 볼티모어의 플리마켓 건물을 샀고 이 건물주였던 유대인의 신원보증을 발판으로 지금의 쇼핑몰 사업에 뛰어들수 있게된 것이다.
『보시다시피 여기에 사람들이 오죽 많이 드나듭니까.매장이 본궤도에 오르면 사물놀이등 한국의 문화행사도 한바탕 열 계획입니다.기업들도 엉뚱한데 가 큰돈 들여가며 광고비를 허비할게 아니라 이런 길목을 잡아야지요.』 눈앞에 닥친 갖가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의 기세는 여간 당당하지 않았다.포토맥 밀스에서의 첫 사업만 제대로 정착된다면 그를 미심쩍게 여기던 한국기업들도앞다퉈 아쉬운 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워싱턴=이장규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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