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의북한>3.김일성은 살아있다 下.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부활한 「김일성」이 전국공연에 나서고 있는 한편 금수산기념궁전은 죽은 김일성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북한 최고의 성역으로 꾸며져 있다.「궁전」은 생전의 김일성이 기거하던 금수산 의사당을개조한 것이다.다음은 지난해 12월초 이곳을 방 문한 재중(在中)동포의 참관증언.
『궁전 경내에 이르는 마지막 구간은 전용전차로 갈아타고 들어갔다.보통 2~3량을 연결했는데 누런 색깔이었다.
한변의 길이가 1㎞ 남짓한 경내는 사방이 강으로 둘러싸여 외부와 차단돼 있었다.
남쪽에는 대동강이,북쪽에는 합장강이 흘렀고 동쪽과 서쪽에도 폭10~15의 수로를 내 남북의 두 강에 연결했다.경내에는 예복차림의 위병들이 2인1조로 군데군데 서있었다.야트막한 금수산을 등지고 앉은 궁전일대는 절경이었다.
건물 외부에서 3층까지 하나의 계단으로 바로 연결해 내부로 들어가게 해놓았다.건물로 올라서기 전 구둣바닥에 쇠조각이 붙었는지 검사했다.실내정숙과 대리석 바닥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사진촬영은 금했다.수백명의 참배객들이 계단을 따라 엄숙한 분위기속에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대부분 북한의 열성당원과 모범근로자들이었지만 당국의 안배에 따른 외국인 방문객들도 눈에 띄었다. 건물안에 들어서자 먼저 김일성의 대리석 입상이 나타났다.우리는 안내원이 시키는대로 그 앞에서 묵념했다.유체가 안치된 곳은 과거 김일성이 외빈들을 맞이하던 접견실이었다.입구는 측문만사용했다.들어가면서 소독용 기계가 강한 바람을 쏟 아내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한 무리의 일행이 들어서면 출입구는 밀폐돼 안팎의 공기가 차단됐다.
실내로 들어서자 유체의 발치에 서게됐다.그곳에서 모두에게 다시 묵념시켰다.오른쪽으로 돌면서 유체의 옆구리에서,머리맡에서,그리고 왼쪽 옆구리에서 계속 묵념은 이어졌다.
약 1.2 높이의 적갈색 대리석 대좌 위에 놓인 수정관 속에김일성의 유체는 가슴 높이까지 노동당기로 덮여 있었다.회색 양복에 흰색 와이셔츠.넥타이차림에다 구두를 신겼으며 조선식 베개로 머리를 받쳐 놓았다.유심히 살폈지만 목덜미의 혹은 안보였다.얼굴은 검푸르게 퇴색하고 주름이 잡혀 품위같은 것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은은한 조명아래 음악이 잔잔하게 흘렀다.북한인 참배객들은 숨소리도 감히 내지못한 채 아주 장엄해 보이는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몇몇은 참다못해 훌쩍훌쩍 울음소리를 냈다.엄숙을 넘어 참으로 성스러운 곳이라는 느낌이었다.그곳은 북한의 최고 성역이었다.』 40여년에 걸쳐 북한을 지배해온 김일성은 자연인으로서는사망했다.그러나 체제를 지탱하는 구심점으로서의 역할은 전혀 손상되지 않고 오히려 다방면에 걸쳐 강화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아직도 1백% 살아 북한을 다스리고 있다.주민들의수첩을 보면 김일성이 생전에 내린 교시가 계절별.시기별로 상세히 적혀 있다.이것만 보면 그 날의 행동지침이 나올 정도다.』(김일성 사망이후 네번 방북한 재미동포) 문제는 김정일이 어떻게 해 이같은 김일성의 유산을 고스란히 자기 것으로 만드는가 하는 것 뿐이다.김정일이 새해들어 처음으로 「사로청」대회에서 모습을 드러낸 자리도 바로 이와 관련된다.그는 30년간 사용해온 「조선사회주의노동청년동맹 」의 명칭을 「김일성사회주의 청년동맹」으로 바꿔 새 깃발을 수여했다.
노동당 전위인 이 조직에는 14~30세까지의 감수성이 예민한젊은이 5백만명이 가입돼 있다.이 조직이 김일성의 이름아래 거듭난 것이다.
이 대회의 「보고」는 『모든 청소년들이 수령의 위대한 청년운동사상과 영도업적을 철저히 옹호.고수하고 만대에 길이 빛내어 나가게 하는 강력한 추동력』임을 다짐하고,『일심단결해 당의 영도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갈 것』을 촉구하고 있다.김 일성과 김정일의 합성(合成)작업이 여기서도 확인되는 것이다.
「조선」이 「김일성」으로 바뀌는 사례는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예상된다.김정일은 시대의 변화를 선취하는 것보다 과거에로 역행하면서 「김일성 우산」을 벗어나지도,벗어날 수도 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김정일의 북한은 대외정책에서는 냉철한 현실인식과 함께 놀랄만큼 뛰어난 대응능력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체제내부만큼은 「김일성 영화」만을 상영하기 위해 영화관 속처럼 계속 캄캄하게 해두지 않을 수 없다.』(재일동포) 북한의 세관에서 마약소지는 묻지 않아도 서적과 비디오테이프만큼은 철저히 조사한다는게 방북인사들의 공통된 증언이다.북한은 그만큼 김일성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면서 외부사상의 유입을 차단하고 있는 것이다.
딱정벌레와 같이 견고한 외피를 가진 북한에서 주민들이 『조선노동당에 대한 믿음이 강하고 우리식 사회주의에의 신념도 높다』(재독동포)는 것은 당연한 현실이다.바깥세상을 생각하거나 비교할 어떤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서적.비디오는 반입 차단 처음에는 『김일성이 죽어야 북한이 잘 살게 된다』는 말에 펄펄 뛰던 모범근로자가 며칠 후 『이제 나는 많은 것을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심경의 변화를 털어놓고 귀국하던 광경을 설명하는 한 중국교포는『우리도 70년대 중반까지는 공산주의에 대한 의심은 추호도 없었다.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좌절.긴장,그리고 기대 ▶金日成은 살아있다 ▶효자둥이는 충성둥이 ▶.장군님'의 軍心 달래기 ▶식량난의 허실 ▶.수용소'식 경제특구 ▶金正日 치하의 민심 ▶체제유지 자신감 있나 ▶중국=전택원 부장 ▶일본=방인철 부장 ▶美서부=안희창 기자 ▶독일=유영구 전문기자 ▶美동부=김용호 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