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당권 분리 싸고 한나라 미묘한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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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당 대표로서 첫날인 4일 박희태 대표는 분주했다. 신임 대표로서 축하받는 것보다 시급한 일이 더 많았다.

18대 국회의 첫 임시국회가 끝나는 이날도 국회는 열리지 않았다. 아직도 거리 시위는 진행 중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심 논란까지 불거졌다. 여권을 추슬러야 하는 박 대표로선 모두가 부담스러운 일들이다.

그래선지 표정이 무거웠다. 이날 오전 국립현충원을 찾은 그는 방명록에 ‘님들의 거룩한 뜻을 받들어 나라를 지키고 민생을 편안하게 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러곤 당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화합형 대표가 되겠다”고 약속한 대로 화합을 강조했다.

박 대표는 첫 최고위원회의에서 “어려운 현안이 많지만 대화를 하고 머리를 맞대면 안 풀릴 일이 있겠느냐”며 “형제처럼 다정하게 국민 앞에 비치자”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공이산(愚公移山)이란 고사를 어려울 때마다 떠올린다”고 덧붙였다. 어리석은 영감이 산을 옮긴다는 뜻의 우공이산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면 마침내 큰일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오후 국회에서 열린 첫 의원총회에선 특유의 입담도 과시했다. 박 대표는 “학생은 학교 가야 되고, 국회의원은 국회에 가야 한다”며 야당의 등원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야당 대표들도 잇따라 만났다. 국회에서 손학규 민주당 대표를 만났고 이회창 총재는 여의도 자유선진당사로 찾아가 면담했다.

◇당권·대권 분리 논란=한나라당 안에선 박 대표가 전날 당선 회견에서 한 발언을 놓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제의 발언은 “지금 당헌·당규는 10년간 야당을 하면서 대통령이 존재하지 않을 때 만든 것이다. 여당이 됐기 때문에 당·청 관계가 변해야 한다”는 대목이었다. 박 대표는 이날도 “현행 당헌·당규에 ‘대권·당권 분리’ 규정은 없다”며 “대선 후보가 당직을 사퇴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박근혜 전 대표 측은 이 발언이 당·청 일체화를 위해 당헌·당규에 규정된 대권·당권 관련 조항을 수정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박 전 대표 시절 만들어진 당헌 7조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임기 동안 명예직 이외의 당직을 겸임할 수 없다’고 해 대권·당권 분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박 전 대표 측의 이정현 의원은 “대권·당권 분리 규정을 바꾸는 건 민주주의 기본원칙에 반하는 일이고 역풍만 거셀 것”이라며 “결국 당이 청와대의 통제를 받겠다는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정몽준 최고위원 측도 “대통령이 당에 직접 개입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당직 하마평들=새 지도부가 출범함에 따라 후임 인사를 놓고 하마평이 나돌고 있다. 사무총장에는 안경률(3선) 의원, 비서실장엔 김효재(초선) 의원이 벌써 거론되고 있다. 친이재오계 인사인 안 의원은 청와대와의 소통에 적임자란 평이다. 조윤선 대변인은 유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지명직 최고위원의 경우 박 대표는 “호남과 충청 지역에서 한 분씩 모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 때문에 충남 출신인 정진석 의원과 박재순 전남도당위원장 등이 후보로 거론된다. 간발의 차이로 최고위원 경선에서 떨어진 김성조 의원도 친박 몫으로 배려될 것이란 얘기가 있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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