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응씨배 세계바둑선수권] 죽음, 그리고 떨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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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이세돌 9단 ●·쿵 제 7단

제5보(66~73)=사망진단서가 이미 내려졌으나 구경꾼들의 심정은 그게 아니다. 마음 한구석에선 다른 사람 아닌 이세돌 9단이니까 귀신 곡할 묘책이 숨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돌아봐도 백△에 두자 흑▲로 잡으러 왔다는 사실이 이상하지 않은가. 세상에 대마가 간단히 죽는 마당에 백△에 둘 프로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빠르게 두어 가던 이세돌 9단의 착수가 갑자기 딱 멈춘 것은 불길한 신호다. 시간이 흐르고 불안감이 점점 고조될 때 66이 떨어졌다.

행마를 가볍게 논할 때 “고수의 밭전(田)자, 하수의 마늘모”라고 한다. 밭전자는 몹시 허술해 수순이 높지 않고선 그 묘리를 이해하기 어렵다. 마늘모는 가장 쉬운 연결 수단이니까 누구나 둘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백 66은 밭전자의 가운데를 마늘모로 연결하고 있다. 마치 상대가 ‘여기를 두시오’하고 명령하는 곳을 두고 있는 느낌이다.

“일단은 그 수밖에 없거든요”라고 김지석 4단은 말한다. 그 수밖에 없다는 것은 살 길이 없다는 뜻인가 묻자 망설임 없이 “그렇다”는 대답이 떨어진다. 대마는 과연 몇 걸음 나가지 못하고 가로막혔다. 다만 71은 쿵제 7단이 가슴이 떨려 움츠린 수. 강적 이세돌의 대마를 잡게 되자 가장 안전하게 둔 것인데 양재호 9단은 ‘참고도’ 흑1로 머리를 내민 뒤 끊었으면 완벽했는데 이 71이 일루의 희망을 주었다고 한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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