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 잘못 올렸다간 수천만원 물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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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회사원 오모(43)씨는 지난해 6월 자신의 사무실에서 박근혜 의원을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박 의원이 정수장학회와 관련해 탈세를 했다는 주장이었다. 정당 홈페이지와 포털 사이트 등에 14차례나 게재했다. 오씨는 후보자를 비방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단순한 의견 표명”이라고 반박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오씨에게 벌금 9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3일 밝혔다. 재판부는 “누구든지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의 정당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객관적인 사실과 부합한다고 볼 만한 자료가 부족한 정보를 제공한 것은 개인의 평가를 왜곡·저하시키는 비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법원은 인터넷 등 사이버 불법행위에 대해 엄격한 판결을 내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엔터 키’ 한 번에 수백만원, 아니 수천만원을 물 수도 있다. 생각 없이 올린 글로 수갑을 찰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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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급력 막대 … 명예 실추 순식간”=2일 서울고법은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악성 댓글을 방치한 4개 포털 사이트에 3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포털 사이트들이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내용이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유포되도록 방치했다”는 게 판결 이유다. 또 “게시물 작성자의 불법행위를 방조한 포털 사이트는 공동 불법행위자로서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의 피해자인 A씨는 인터넷에 관련 글이 게시된 지 10여 일 만에 사회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사건은 A씨와 헤어진 여성 B씨가 자살하면서 시작됐다. B씨 어머니는 “B씨가 A씨에게 버림받아 자살했다”는 취지의 글을 B씨의 인터넷 개인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 글은 일부 네티즌에 의해 퍼나르기가 됐다. 일부 언론에도 기사화됐다. 순식간에 이 글은 모든 포털에 확대 재생산됐다. 4대 포털에 A씨를 비난하는 수십만 개의 댓글이 올라왔다. A씨의 실명과 출신 학교, 회사 이름이 인터넷에 떠돌아다녔다.

회사원 이모씨도 별 생각 없이 인터넷에 글을 올렸다 법원에서 유죄를 받았다. 그는 해고된 뒤 인터넷 메신저 대화명을 전직 회사 사장을 욕하는 내용으로 게시했다. 이씨는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대법원은 그에게 모욕죄를 적용해 벌금 100만원을 확정했다. “대화 상대방들에게 계속 노출되는 공간에서 상대방을 모욕했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민·형사상 책임 커질 듯”=인터넷상의 허위 댓글, 인터넷 매체의 허위 기사에 대해 민·형사 책임을 묻는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서울고법은 “폭설 피해 현장에서 양주파티를 벌였다는 오보로 명예를 훼손당했다”며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인터넷 매체 P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고 3일 밝혔다. “이 전 총리가 피해 현장 시찰도 하지 않은 채 무분별하게 술을 즐긴 것 같은 인상을 줘 허위 사실로 이 전 총리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였다.

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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