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컴백 … 온몸으로 가르치는 ‘우포늪 지킴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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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는 물 깊이 6m 이하의 젖은 땅.”

3일 경남 창녕군 유어면 세진리 우포늪 생태관(www.upo.or.kr).한 무리의 초등학생을 안내하던 남자가 이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오른 손가락 5개를 다 펴고 왼손가락은 하나만 펴서 숫자 6을 표시한 뒤 온몸을 물결치듯 흔들면서 앉았다 일어선다. 관람객들의 폭소가 터지고 그 남자는 “따라 해보세요”하면서 동작을 몇 번이고 반복한다.

노용호(45)우포늪 생태관장이다. 그는 “람사르 협약에서 규정한 습지의 정의를 인상 깊게 알려주기 위한 제스추어”라고 설명했다. 생태관 앞 우포늪에서는 바지를 걷고 물속에 들어가 부들 줄기를 휘어잡고 설명을 이어간다.

가시연꽃 모형 앞에서는 가시에 찔려보면서 “아야”라고 고함을 지른다. 가시연꽃에 가시가 있다는 것을 알려 주려는 일종의 퍼포먼스다.

우포늪에 대해 희극 배우처럼 온몸으로 설명 하는 그는 지난해 7월까지만 해도 대학교수였다.

미국 뉴욕대에서 경영학 석사과정을 마친 뒤 경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996년부터 대경대(경북 경산시)관광과에서 생태관광 마케팅을 강의했다. 하지만 창녕군이 올들어 우포늪에 생태학습관을 짓고 초대 관장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그의 고향은 우포늪이 보이는 이방면 장재리 장재마을. 아침마다 물안개가 자욱한 우포 늪을 보면서 자란 그였기에 우포늪을 잊을 수 없었다. 그의 조상들이 우포늪 주변 대합면 주매마을에 400여년전에 뿌리를 내린 뒤 지금도 많은 친척들이 살고 있어 우포늪은 어머니 품 같은 곳이었다.

박사학위 논문도 우포늪, 국립수목원, 무주 반딧불이 축제를 찾는 관광객들의 만족도를 비교한 내용이었다. 교수시절에는 우포늪 주변 마을 주민들이 생태관광을 통해 소득을 높일 방안에 대한 몇편의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우포늪에 대한 관심은 남달랐다.

그가 교수를 그만두고 우포늪 지킴이로 가려하자 가족들은 말렸다. “전공을 살려 생태관광을 통해 고향마을 주민들의 소득을 높이고 싶다” 며 가족들을 설득한 뒤 생태관장에 응모해 창녕군 계약직 공무원으로 뽑혀 지난해 8월부터 근무하고 있다.

그가 하는 일은 우포늪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생태관을 안내하고 우포늪을 자전거로 달리며 설명해주는 것이다.

매달 넷째주 토요일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체험학습도 열고 있다. 우포늪 생태공부는 물론이고 천연염색, 솟대 만들기, 우포늪 찾는 철새만들기 등 매달 다른 체험으로 진행된다.

10월말 람사르협약 당사국 총회가 우포늪에서 열리는 것이 알려지면서 늘어나고 있는 우포늪 외국인 방문객들은 그의 유창한 영어와 제스추어가 섞인 설명에 “댕큐”를 연발한다.

그가 한국철도공사에 제안해 올들어 시작한 ‘KTX와 함께하는 생태관광체험’도 인기다. 전남 광주와 대전지역에서 다녀갔고 여름방학에는 수도권 지역에서 예약이 돼 있을 정도다.

그는 람사르 협약 당사국 총회를 앞두고 외국인들을 위한 ‘생태 한류체험’, 다문화 가정 주부와 지역아동센터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사랑의 생태체험’도 준비하고 있다. 지역주민들이 우포늪을 안내하는 ‘생태강사제’ 도입도 창녕군에 건의해 놓고 있다.

그는 “늪은 모기가 들끓고 개발해야 할 버려진 땅이 아니라 물과 땅의 경계에 자리잡은 생태계의 보고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다”라고 말했다.

◇우포늪 생태관=창녕군이 사업비 117억원을 들여 유어면 세진리 10만6200㎡ 부지에 연면적 3303㎡(지상2층)규모로 지난해 8월 개관했다. 우포늪에서 자라는 동식물의 표본 전시관, 늪의 과거와 현재, 우포늪 사계 영상실, 회의실 등이 있다.

개관시간은 월요일을 제외한 오전 9시∼오후 6시. 중부내륙고속도로 창녕 나들목에서 우회전, 국도20호선을 타고가다 회룡마을에서 우회전해 2㎞쯤 들어가면 된다. 055-530-2690

글·사진=김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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