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재현 시시각각

식탁의 자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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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요즘 우리 사회는 무지개로 치면 빨강과 보라색만 남은 사회다. 중간의 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무지개 고유의 스펙트럼이 어느 결엔가 무너져버렸다. 빨강과 보라만 남아서 서로 멱살 잡고 물어뜯고 있다. 언론이 언론을 물어뜯고, 시민단체가 시민단체를 삿대질한다. 소통을 전문적으로 연구한다는 언론학자마저 상당수가 양쪽으로 편이 갈렸다.

이젠 목사도 그냥 목사가 아니고 신부도 그냥 신부가 아니다.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 목사님이고 신부님인지, 죄송하지만 사전에 정중히 여쭐 필요가 생겼다. 변호사도 더 이상 직함만으로도 부러움을 사던 변호사가 아니다. 쇠고기나 ‘쇠파이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미리 물어볼 필요가 생겼다. 주황·노랑·초록·파랑·남색은 기자든 학자든 종교인이든, 심지어 평범한 직장인마저, 눈에 핏발 세운 빨강과 보라에게 기 죽고 눈치 보며 지내는 요즘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게 아니었다. 내 생각이 좁았다. 무지개의 중간 스펙트럼은 여전히 건재했다. 어제 서울 금천구 시흥동의 미국 쇠고기 직판장을 찾아가 보았다. 직업의식 반, 호기심 반의 발걸음이었다. 미국 쇠고기 판매 사흘째. 매장에선 줄을 선 손님 받느라, 안쪽 사무실에선 문의 전화와 택배 주문 처리하느라 북새통이었다. “수원요? 그럼 ○○○번 버스 타시고 금천구청에서 내려서….” “1호선이라고요? 시흥역 내려서 마을버스 ○번 타고….”

친구가 전화로 귀띔해줘 20여 분 걸어 찾아왔다는 60대 주부 5명은 광우병 얘기를 꺼내자 “대통령이 국민들 먹고 죽으라고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럴 때 쇠고기 좀 먹어보지 언제 먹어보나”라는 얘기도 나왔다. 한 남자 노인은 “안 먹을 사람 안 먹고 먹을 사람 먹으면 되지”라고 했다. 곁에서 “내 돈 내고 내가 먹겠다는데 왜들 그래. 내 건강은 내가 알아서 챙겨”라고 거들었다. 20대로 보이는 여성은 사진기자가 매장을 촬영하자 “내 얼굴은 안 나오게 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정육점은 골목 후미진 곳에 있었다. 부근 아파트 단지 경비원은 “손님들에게 가게 위치 가르쳐주느라 일거리가 하나 늘었다”고 말했다.

그제 이 정육점 앞에서 시민단체가 판매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했다. 업체 측과 승강이도 벌였다. 그러나 가게 문이 잠시 닫혔다 열렸을 뿐 소비자의 발길은 멈추지 않았다. 어제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미국산 쇠고기 유통 저지 및 불매운동 선포식’ 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먹기 싫은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불매운동을 벌이는 것이야 그들의 자유다. 그러나 유통 자체를 막겠다고 나선다면 “내 돈 내고 내가 먹겠다”는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일이 된다. 원산지 표시제가 확대 시행된 마당이니 유통 과정 감시나 가짜 한우 가려내기 같은 활동에 힘을 모아주면 좋겠는데 그들이 탐탁해하기나 할까.

나는 시흥동 정육점을 두둔할 생각이 없지만 상인으로서의 권리는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업체 사무실 벽엔 재미있는 사훈(社訓)이 걸려 있었다. ‘알아서 하자’였다. 소비자도 미국산 쇠고기를 사먹든 안 사먹든 알아서 하면 된다. 물론 정부는 수입 단계부터 식탁까지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한다. 학교·군대 급식, 햄버거 패티처럼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분야에는 특히 엄격해야 한다. 그런 바탕 위에서라면 누구도 남의 먹을 권리를 방해할 수 없다. 이미 우리 국민은 쇠고기라면 전문가 뺨치는 지식과 주견을 갖게 됐다. 온 사회가 양편으로 갈려 싸우는 와중에 중간층의 국민들은 조용히 사태를 지켜보며 사먹을지 말지를 저울질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앞으로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정육점을 찾는 그룹과 찾지 않는 그룹으로 나뉠 것이다. 제발 서로의 선택권을 인정하자. 공감하지는 못하더라도 삿대질하지는 말자. 식탁의 안전 못지않게 소중한 권리가 ‘식탁의 자유’다.

노재현 문화스포츠 에디터